정년이 되어 막 은퇴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동안 모은 자산에서 매월 얼마씩 인출해야 하는지궁금해 한다. 인출 금액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 은퇴자들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은퇴자들이 금융전문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바로 ‘얼마나 써야 하나(How much can I spend?)’이다.

◆ 은퇴 5년 늦추기 Vs 수익률 높이기

은퇴자산이 1억원이 있다고 가정할 때 매월 얼마씩 쓰는 게 최선인지는 개인마다,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은퇴시점에 우리나라의 평균적인 부부가 인출할 수 있는 생활비를 알 수 있다면 이를 기준으로 자신의 월 인출액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나라 평균 초혼연령에 따른 부부 나이차는 3년으로, 남편이 60세(아내 57세)에 은퇴하면 부부가 자산 1억원에서 인출할 수 있는 평균 생활비는 월 35만원 정도다. 1억원 당 35만원씩 인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만약 부부가 은퇴자산으로 3억원이 있고, 국민연금에서 월 90만원, 개인연금에서 3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해보면 이들은 월 생활비로 225만원을 마련할 수 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월 생활비가 기대보다 부족한 경우 생활비를 늘릴 수 있는 방법으로 은퇴시기를 늦추거나 은퇴자산의 수익률을 높이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은퇴시기를 늦춘 경우로 계산해보면 남편이 65세일 때 인출을 시작하면 은퇴자산 1억원은 월 39만원, 3억원은 117만원씩 꺼내 쓸 수 있다. 70세로 5년 더 늦추면 1억원에 월 46만원, 3억원은 138만원으로 늘어난다.

또 다른 방법은 은퇴자산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운용 수익률을 연 2%에서 4%로 2%p 높이면 1억원당 월 생활비가 35만원에서 46만원으로 11만원 늘어난다. 은퇴시기를 60에서 70세로 10년 연장했을 때와 같은 효과다. 수익률을 6%로 더 높이면 1억원에 월 59만원을 꺼내 쓸 수 있다. 추가로 월 13만원을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김혜령 과장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은퇴자산을 투자할 때에는 운용성과와 인출계획을 정기적으로 점검해 인출 계획을 역동적으로 변화시켜 가야 한다”며 “투자성과가 당초 기대에 못 미쳤다면 생활비를 낮춰 잡고 투자성과가 뛰어나다면 생활비를 늘리거나 다른 목적자금을 만들 계획으로 초과금을 따로 떼어둘 수 있다”고 말했다.

◆완벽한 자산관리는 불가능…장단점 고려해 구성해야

은퇴자산 1억원, 60세 은퇴는 기본처럼 되어 있지만 막상 현실 속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게 되면 미리 짜둔 포트폴리오는 소용이 없게 된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현실 세계에서 완벽한 은퇴자산은 존재하지 않으며 장점과 단점을 고려해 여러 자산을 조합하며 은퇴자산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퇴자산의 이상형이 있다면 사망시점까지 현금흐름이 있고, 장기적으로 화폐가치를 지키며, 투자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자산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상형의 은퇴자산은 말 그대로 이상형일 뿐이며 현실형이 아니다.

현실 속 은퇴자산은 어느 하나가 부족하다. 보험회사의 종신연금처럼 사망시점까지 현금흐름을 제공하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가 어렵다. 대부분의 투자상품처럼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면 투자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또 시판되는 모든 저축상품과 같이 투자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상품은 인플레이션 대비가 어렵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 환경에서는 사정이 더 심각해진다.

미래에 닥칠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은퇴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주춧돌에 해당되는 자산, 사망시점까지 현금흐름이 나오는 자산이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 종신연금, 주택연금, 공무원 연금, 사학연금 등이 주춧돌 역할을 하는 자산들이며 월세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 상품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기 위한 자산도 구비해야 한다. 주식, 물가연동채권, 수익성 부동산 등이 인플레이션 헤지가 가능한 자산들이다. 투자자에겐 장기간에 걸쳐 주식과 같은 리스크 자산이 가장 효과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었다. 오늘날처럼 수명이 길어진 세상에서는 투자의 시간 지평을 넓히는 것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은퇴 이후에는 현금 유동성이 꼭 필요하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금융위기 발생 주기가 더욱 짧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2000년대 초 인터넷 버블 붕괴, 2003년 카드채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4번의 위기를 맞이했다.

현금은 위기 시 가장 확실한 도피처이자 안전자산으로 은퇴 이후의 자산운용에서는 단 한번의 실수가 파국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자금은 현금으로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상건 상무는 “현실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은퇴자산 포트폴리오의 개념을 알고 노후 준비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며 “은퇴자산 포트폴리오의 개념은 은퇴자산 운용이라는 긴 항해에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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