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누룩, 전통주 공부에 빠진 초로의 최덕영 대표

“변신하지 않으면 10년 내 업계 70% 쇠락할 것” 경고

   
▲ 자신이 만든 막걸리를 시음하도록 잔에 따라주고 있는 최덕영 대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하루에 400~500말의 막걸리를 면단위 양조장에서 팔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 애주가들이 찾는 750ml 페트병에 든 막걸리로 치면 1만병에서 1만2000병정도 되는 양이다. 그 시절에는 하루 종일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막걸리를 빚었다고 한다.

새벽부터 밀가루를 쪄서 냉각시킨 뒤 입국(막걸리 발효제, 누룩의 일종)을 넣고 항아리에 넣은 뒤, 다 익은 술은 걸러 말통으로 옮기고 다음날 빚을 술 재료를 점검하다 보면 어느덧 저녁이었다고 한다. 배달만 전담하는 직원이 두어 명 있어야 했을 정도로 막걸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1970년대의 이야기다.

회한 가득 담긴 이 이야기를 건네는 아산의 둔포양조장 최덕영 대표(69)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이유는 업계의 앞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갈밭처럼 거친 전망을 내놓았다.
“향후 10년 사이에 70% 정도 쇠락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최 대표. 그리고 이런 상황이 회복되려면 20년쯤은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그동안 고민 없이 막걸리가 잘 팔리던 시절의 제조법이었던 입국을 사용해 막걸리를 만들던 양조장을 대신해 누룩을 띄어 가양주 담듯 술을 빚어 파는 새로운 술도가들이 등장한 것이 몇 년 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최 대표의 이러한 시각의 근저에는 누룩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양조장 막걸리는 앞서 말했듯이 입국(주로 황국과 백국)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2009년 막걸리 붐 이후에 직접 누룩을 띄워 술을 빚는 프리미엄 막걸리 업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그들만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누룩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구분된 막걸리 시장이 당분간 펼쳐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초로를 벗어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10년 전부터 누룩을 공부하고 있다. 연구회를 만들어 누룩의 성과를 발표하면서 둔포양조장에서 자신이 빚는 막걸리를 개선하는데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그는 입국발효방식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누룩을 같이 사용해서 술(둔포왕막걸리, 해쌀이막걸리)을 빚고 있다. 언젠가 자신만의 누룩으로 익어가는 술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또한 국세청은 물론 농림부에서 실시하는 전통주 관련 강좌는 빠짐없이 챙겨 들었다고 한다. 입국발효가 전통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일부러 전통주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 최대표가 직접 제작한 누룩틀과 누룩.

그리고 그 공부의 결과는 양조장 한 쪽 벽면을 채운 공구들이었다. 술을 빚기 위해 필요한 기계를 직접 만들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도구라고 한다. 양조장 설비가 고장 나면 자신이 직접 수리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양조장이라고 부르기보다 철공소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것만이 아니다. 양조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입구에는 생맥주를 따라 마시듯 둔포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기계가 놓여 있고, 양조장 한쪽 구석에는 케그(생맥주 저장용 알루미늄통)에 막걸리를 주입하는 기계가 놓여 있다. 생맥주처럼 즐길 수 있는 생막걸리의 세상을 그리며 특허를 낸 이상철씨와 협력을 맺고 연구 중이라고 한다.

이 자체가 보통의 양조장에서 볼 수 없는 낯선 장면이지만, 모두 최 대표의 우리 술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말처럼 쇠락하는 70%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 거듭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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