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수요 늘어…상품다양화·자산관리로 신수익 기대
자본시장법서 떼 ‘신탁업법’으로 분리…은행·보험권 수혜
신탁활성화 방안에 ‘세제혜택 지원’ 빠져있어 실효성 의문

<대한금융신문=김미리내 기자> 정부가 ‘신탁’을 고령화·저성장 시대 종합재산관리서비스의 한 축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금융업계 전반에 새로운 먹거리고 부상할 전망이다. 수탁재산 범위를 넓히고 진입규제를 낮춰 다양한 전문신탁사 등장을 유도하는 한편, 상품다양화로 시장규모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현재 자본시장법에서 포괄하고 있는 신탁법이 분리돼 별도로 제정됨에 따라 기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에 보다 친화적이었던 부분들이 사라져, 규모와 고객 접점이 많은 은행과 보험사 대비 외려 경쟁력이 축소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 ‘신탁 활성화 방안’…진입장벽 낮추고 수탁범위 확대
금융위원회는 12일 기존 예금·펀드·보험 등 금융자산과 부동산에 한정됐던 노후 자산관리를 신탁을 통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해외에서 이미 고령화 대응 방안으로 신탁업이 활성화 된 반면, 국내의 경우 신탁업을 금융투자업의 하나로 규율하다 보니 독립 신탁사 출현이 어렵고, 금융사들이 겸업형태로만 신탁을 취급해 단순 운용에 편중되는 등 종합재산관리서비스 역할을 하지 못해 시장 확대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당국은 우선적으로 전문화된 독립 신탁업자 출현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출 방침이다. 현재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 준한 인가기준이 적용돼 종합투자신탁업은 250억원, 금전신탁 130억원, 부동산신탁 100억원의 자기자본이 필요하다. 진입장벽을 낮출 경우 상속세제·법률자문에 강점 있는 법무법인이 유언신탁 전문 신탁사를 겸하고 의료법인이 치매요양신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등 특화된 전문 신탁사들의 출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금전·증권·부동산 등 7종류로 제한돼 있는 수탁재산(맡길 수 있는 재산) 범위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퇴직 후 남아있는 주택담보 대출 등 자산에 결합된 부채를 비롯해 영업(사업), 담보권, 보험금청구권 신탁도 허용될 방침이다.

기존에 신탁이 불가능했던 부채나 보험금 청구권 등이 포함되면 현재 20건에 불과한 종합재산신탁이 활성화돼 보유한 모든 자산을 신탁을 통해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고객이 은행이나 증권사 등 편한 종합금융사에 재산을 일괄 신탁하면, 수탁사(금융사)가 부동산 등 자체 관리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전문 신탁사에 다시 위탁하는 재신탁도 허용된다. 이를 통해 총체적인 자산관리 전문성을 높이고 고객들도 편리하고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

   
 

이같이 시장이 확대되면 △증여신탁 △생전신탁 △유언신탁 △유동화신탁 △치매신탁 등 상품도 보다 다양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융위는 신탁업의 업무영역 및 범위를 확대함에 따라 기존 신탁법의 업법 역할을 하던 자본시장법에서 분리해 별도 신탁업법을 제정할 방침이다. 이 경우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하던 신탁관련 법안은 모두 삭제된다.

금융위는 오는 6월까지 TF를 운영해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신탁업법 제정안을 만들고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신탁시장 경쟁 가속화…은행·보험권 수혜?
그러나 현재 증권, 자산운용에 역할이 맞춰져 있던 신탁법이 별도로 분리됨에 따라 오히려 금융투자업계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탁업 제도가 개선된다고 해도 현재의 은행, 증권, 보험사의 업무형태로는 인력과 전문성이 떨어져 당장 종합재산신탁을 수행하기 어렵다”며 “단기적으로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기존에 증권쪽에 보다 친화된 형태였던 것(신탁업)이 따로 떼어져 나오면서 규모가 크고, 개인 간 접점이 많은 은행과 보험권에서 보다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보험권은 보험금 청구권을 다루는데 더 용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은행들이 제도개선에 발맞춰 신탁 관련 조직을 확대하는 등 선점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실제 지난해 10월말 기준 은행의 신탁 수탁규모는 362조원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하며, 업권 중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 증권은 201조원, 보험 9조원, 부동산전업신탁사가 154조원을 기록했다.

   
 

다만 증권업 내에서도 올해를 신탁업 확대 적기로 보고 있어 활발한 움직임이 기대된다. 지난해 증여세 절세상품으로 활용되던 즉시연금보험의 세제혜택 축소로 증여신탁이 반사이익을 보며 시장규모가 큰 폭으로 확대된데다, 내년 형평성 차원에서 다시금 할인율 조정이 이뤄질 전망이어서 이른바 ‘절판마케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증여신탁은 은행이나 보험사에서도 판매하고 있지만 삼성증권이 지난해 전체 판매 규모의 80% 가량을 차지하는 등 이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신영증권은 △종합자산관리 △자산승계 △특별부양 △공익기부의 4가지 유형의 종합가족금융서비스인 ‘패밀리 헤리티지 서비스를 출시했다. NH투자증권은 올해 유언대용신탁과 장애인신탁 판매를 확대하는 한편 성년후견인신탁, 치매신탁 등 새로운 신탁상품을 내놓으며 시장 지배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절세혜택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증여신탁이 내년 세법개정으로 할인율이 축소될 전망이어서 올해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할 것”이라며 “신탁 전문인력을 더욱 늘리고 상품을 다양화 하는 등 올해 시장 확대를 위한 방안들을 추진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상품인식 확대, 절세혜택 등 유인책 부족은 과제
그러나 실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세제혜택이 반드시 뒷받침 돼야 하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탁업이 가장 활성화된 미국의 경우 파격적인 세제혜택으로 신탁업이 크게 확대됐다”며 “이는 외려 음성적인 승계를 막아 세수를 더욱 확보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고 있어 세제혜택을 확대하는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탁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일단 ‘신탁’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게 우선 과제”라며 “신탁은 단순 운용이나 투자가 아니라 고령화에 따라 종합적인 자산관리를 위한 컨설팅 영역으로 인식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세제혜택과 같은 고객이 관심을 가질만한 유인책이 주어져야 한다”며 “실제 지난해 세제혜택이 있는 증여신탁이 큰 폭으로 확대된 것과 달리 세제혜택이 없거나 낮은 유언대용신탁, 장애인신탁 등은 아직까지 가입규모가 미미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활성화 방안에 세제지원 관련 내용은 빠져있어 일각에서는 실효성 의문이 제기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세제실(기재부)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으로 당장 지원방안이 마련된 바는 없다”며 “장애인신탁의 경우 세제확대 필요성을 인식해 몇년전부터 건의를 했지만 적용되지 않고 있어 세제적인 지원이 가능할지는 지켜봐야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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