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업계, 수백만원대 책임준비금 일시 정산 분납화 추진
고객부담 완화 차원…연체·미납시 제재 없어 보험사 부담↑

<대한금융신문=김미리내 기자> #. 40세 남성 A씨는 일반 사무직, 자가용 운전자로 100세까지 보장하는 20년 납입 종합상해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이후 55세에 은퇴 후 택시운전을 하게 되면서 보험사에 직업변경 내용을 통지했다. 직업변경 내용을 보험사에 고지하지 않으면 사고발생 시 통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이 줄어든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일반 사무직(상해위험등급 1급)에서 영업용 운전자인 택시운전사(상해위험등급 3급)로 직업이 변경됨에 따라 통지 다음 달부터 보험료가 4만원 오르는 동시에, 해지환급금 차액인 348만원을 일시에 납입해야만 했다.

   
 

◇ 직업변경 시 일시 추징금 분납화…민원 및 분쟁해소

최근 경제 환경 변화로 직업이동이 빈번해지고, 베이비부머 등 은퇴인구가 급증하면서 A씨와 같이 직업이 변경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위험직종으로 직업이 변경될 경우 보험료 증가와 함께 일시 추징금이 발생하는데, A씨와 같이 보험료를 납입한 기간이 길고, 상해·비갱신담보가 많은 계약일수록 추징금액이 늘어난다. 이는 100세까지 보장해야하는 A씨의 위험이 높아지면서 현시점의 위험보험료 책임준비금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현재까지 납입한 보험료의 책임준비금의 차액분을 한 번에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계약해지 시 해지환금급도 그만큼 늘어난다.

그러나 이 같은 추징금이 수백만원에 이를 경우 계약자들이 경제적 부담을 느껴 민원이 발생하고 있으며, 위험 직군으로 직업 변경 시 보험료가 상승할까 우려돼 아예 고지를 하지 않아 사고발생 시 지급보험금이 낮아져 보험신뢰도가 하락하는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손보사들이 보험 계약자의 직업(직무) 변경으로 상해위험등급이 높아질 경우 추가로 쌓아야 하는 위험보장보험료의 책임준비금 정산 방식을 일시납에서 분납형식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가장 먼저 동부화재가 지난해 7월부터 특별약관(직업·직무 변경 시 준비금 정산액 분할납입 특약)을 통해 전 상품에 이 같은 일시 추징금에 분납형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적용하고 있다. 계약자는 최대 5년(60개월)까지 분납이 가능하며, 언제든 일시 상환이 가능하다. 단 연 3% 정도의 이자를 내야한다. 

고객 편익을 높이는 동시에 민원 및 분쟁을 사전에 줄이고, 통지의무 위반의 장애요인 제거를 통해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키려는 의도다.

이를 위해 동부화재는 6개월간 신규 계약변경 시스템을 개발하고, 통지의무 위반 개선 및 계약변경 활성화를 위한 전사적 캠페인을 시행했다.

동부화재 관계자는 “계약변경 시 정산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해 고객의 경제 상황에 맞도록 납입부담을 낮춰 소비자 편의를 높였다”며 “민원발생 사전에 줄이고 계약변경을 하지 않아 기대한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등의 보험신뢰도를 낮추는 일이 없도록 개선하는 한편, 상품개발, 회계처리, 준비금 결산 등 전사차원의 협의체를 운용해 발생 가능한 다양한 리스크에 대한 검토도 마쳤다”고 말했다.

동부화재를 시작으로 대형 손보사들도 이 같은 작업을 준비 중에 있다. KB손보가 시스템 마련 등 준비 작업을 거쳐 다음 달부터 시행을 추진하며, 삼성화재도 시행을 위한 개선 내용을 점검 중이다.

◇ 책임준비금 미납에 따른 리스크 발생

고객의 편의를 위해 추진하는 작업이지만, 책임준비금 차액분의 분급을 추진하는 것은 해당 계약자의 책임준비금이 적시에 쌓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리스크도 존재한다.

책임준비금이란 보험사가 향후 보험금(해약환급금)으로 지급할 재원으로 반드시 내부에 적립해야 하는 자금이며, 감독당국의 감독사항이기도 하다. 분납 시 미납금액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은 보험계약자의 애로사항을 감안해 분납을 신청한 계약자의 경우 미납금액을 차감해 보험사가 준비금을 덜 쌓는 것을 승인해 줬다.

즉 준비금을 덜 쌓은 상태에서 보험사고가 일어나 보험금이 지급될 경우 미납된 금액만큼의 비율로 공제 후 비례보상된다.

예를 들어 상해입원일당 담보를 가입한 계약자의 상해사고 준비금이 10만원일 경우 미납된 준비금 추징금이 1만원이면 보험금이 10분의 1만큼 공제 후 지급되는 것이다.

문제는 추징금 분납을 신청한 계약자들이 납입을 하지 않는 경우 이에 대한 제재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추징금을 분할납부 하지 않았다고 해서 계약이 실효되는 등의 제재조건이 없다”며 “그나마 이자를 부리토록 했지만 지연해서 납부를 하지 않는 경우 만기환급시기까지 보험사가 리스크를 계속해서 안고 가는 체계”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객 편의를 위한 것으로 취지 자체는 좋지만 이를 적용할 시스템 개발 등이 필요한데다, 분납을 하지 않을 경우 리스크를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올수도 있다”며 “약관대출을 통해 일시 추징금을 납부할 수 있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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