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는 어디든 있지만 리더는 드문 리더십의 세계

위성호 신한은행장 ‘선배로서, 리더로서’ 역할 강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는 트로이 원정에 나선 그리스연합군의 아가멤논(미케네 왕)과 불굴의 용사 아킬레우스 간의 갈등이 이야기의 핵심 소재이다. 패권을 차지하고 싶으나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한 아가멤논과 패권보다는 명예를 추구하는 용맹한 장수 아킬레우스는 9년간의 트로이 원정 기간 동안 자주 충돌한다. 서로 생각하고 있는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갈등은 전투에서 획득한 전리품에 대한 분배의 정의가 무너지면서 시작됐다. 아킬레우스에게 주어졌던 아폴론 신전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은 왕의 권위로 탈취해 간다. 그리고 서사시는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로 시작한다.

9년 동안 전투를 벌이면서 선두에서 동료들과 전장을 누비며 생사를 같이 한 아킬레우스는 자신이 세운 전공에 대한 몫을 권위에 의해 빼앗기는 순간 더 이상 싸워야할 명분을 잃게 된다. 명예를 위해 참전한 전쟁에서 지켜야할 명예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파업에 들어가고 당연하게도 그리스 연합군은 수세에 몰린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영웅 중 리더는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상당수가 전제적 리더십을 구사하는 보스들이다. 우선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있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대표적인 보스이다. 그리고 왕비인 헬레네를 트로이에 납치당해 이 전쟁을 일으키자고 형인 아가멤논을 부추겼던 메넬라우스도 리더 스타일에 속하진 않는다.

오히려 독불장군처럼 보이고 소통능력 마저 떨어져 펠로우십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아킬레우스는 분명하게 리더의 역할을 다해낸다. 그리고 트로이의 첫째 왕자 헥토르는 리더의 전형으로 그려질 정도로 호메로스는 애정으로 그를 묘사하고 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모든 전투에서 뒷전에 있지 않고 함께 싸움을 치러나간다. 현장에서 벗어나 뒷짐 지고 사후 평가를 하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와는 분명하게 달랐다.
지난 주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한 위성호 행장이 취임사에서 “은행장이 아닌 선배, 보스가 아닌 리더로 걸림돌을 제거하고 디딤돌을 놓으며 새로운 신한을 위해 전진하겠다”고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을 설명했다. 즉 보스 스타일로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이자 앞에서 이끄는 리더로서 신한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위 행장이 지적했듯이 현재의 금융시장은 더욱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그래서 위 행장은 확실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 ‘디지털과 글로벌’이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우는 경영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은행과 금융회사들이 내걸고 있는 기치이다. 선택할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 행장은 경쟁은행들과의 간격을 더욱 벌리는 초격차의 리딩뱅크를 만들자고 말한다. 그런데 그 방식은 목표를 세우고 이를 독려하고 채근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고 현장에서 같이 해나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리더들은 자신이 보스로 비쳐지기 보다는 리더로 여겨지길 원한다. 그런데 보스는 어디서나 존재할 수 있지만 리더는 흔하지 않은 것이 리더십의 세계이다. 호메로스가 2800년 전에 쓴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라는 왕들보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처럼 2인자들에게 주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리아스>에 그 답이 나와 있다. 리더로 존경받는 사람과 보스처럼 굴다 참혹한 결과를 맞는 사람들은 ‘말과 행동’에서 운명이 갈렸다. 언행일치가 된 사람들은 리더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보스들은 불운한 삶을 살았다.

21세기 사회에서도 리더십의 성패는 말과 행동의 일치에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정치지도자나 기업의 리더를 누가 신뢰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위 행장의 리더론은 주목받을 것이다. 향후 5년간 벌어질 은행권의 치열한 경쟁은 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간에 벌인 피 튀는 전쟁 그 이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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