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통제 의미 담긴 계열사 임원 출근 시간 변경

자율 경영 첫 시도, 자신만의 기준 만들지 관심 집중

   
▲ 서울 서초동 삼성금융계열사 전경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공적 시간의 등장은 권력의 근대적 통제시스템이 가동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공적 시간을 타자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권력이 일국적 차원을 넘어서 국경 밖으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조공책봉관계로 동아시아의 질서를 묶으려 했던 중국은 주변국 스스로 독자적인 시간을 갖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황제 이외의 조공책봉 관계에 있는 군왕이 자신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중화의 통제권을 벗어나 별도의 세계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선의 시간과 역법을 만들기 위해 천문 관측기구와 시계, 그리고 천문관을 개발하려했던 세종은 중국으로부터 갖은 방해를 받아야만 했다. 중국과 다른 조선의 기후, 자연조건에 맞는 농법을 개발해 백성을 배불리 먹여 살려야겠다는 세종의 생각은 중화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이단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 같은 공적 시간의 대한 태도는 동양만의 독점물은 아니었다.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대항해시대가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유는 정교한 시계가 등장했기 때문에 경도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이전까지는 방어에만 급급해야 했던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대륙을 벗어나 새로운 모험을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계의 등장이 유럽의 외연을 확장시킨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면, 시계 침이 문자반에 알려주는 시간을 표준화하면서 하나의 공간으로서의 지구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고 네트워크로 묶는 속도도 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크게는 법률의 발효 및 보험의 개시 시점부터 작게는 기차의 출발시간까지 표준시는 정치적, 경제적, 과학적, 법률적 비효율을 제거하면서 수많은 오류와 불일치를 정리해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군사적 목적의 제국주의적 시선이 담겨있었다. 서로 다른 다섯 가지의 시간대를 가지고 있어 국경에서의 효율적인 군사작전이 불가능했던 독일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헬무트 폰 몰트케 참모총장은 표준시 도입을 강력히 주창했는데, 바로 이것이 표준시의 핵심 의제였던 것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그리고 삼성카드가 지난달 중순, 임원들의 출근 시간을 6시 반에서 8~9시로 변경시켰다. 지난 2012년 7월, 미래전략실에서 이건희 회장의 새벽 출근을 계열사에 알리면서 시작된 삼성만의 획일적인 그룹문화가 금융계열사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율 경영의 취지대로 고객과 거래처 근무 시간에 맞춰 출근 시간을 변경한 것이지만, 미래전략실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삼성생명의 김창수 대표가 금융계열사의 맏형으로서 이러한 선택을 이끌어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서로 다른 시선이 담겨 있는 그룹 전체를 회장의 행동에 의해 보이지 않는 구속력을 발휘하는 공적시간으로 일원화된다는 것 자체가 매우 봉건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에 금융계열사 임원의 출근시간이 변경된 것은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행위다.

생명이든, 화재든, 카드이든 이제는 자율적인 시간관을 가진 만큼 그들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시장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해체된 미래전략실에서 금융일류화추진팀이 어떤 전략을 도출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각 사별 환경에 맞춰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만큼 일류화의 첩경은 없을 것이다. 특히 유사 이래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다시 삼성금융계열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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