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IT전문가서 맥주양조가로의 화려한 변신

‘한국맥주’ 만들기 위해 홉 작목반 만든 홍성태 대표

   
▲ 지난해 크래프트맥주 제조면허를 내고 벨기에 스타일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홍성태(사진 가운데) 대표가 홉을 직접 재배하는 모습.(사진 : 뱅크크릭브루어리)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좋은 맥주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크래프트 맥주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은 물론 일본, 영국, 독일, 벨기에, 슬로베니아 등 안다녀본 국가가 없을 정도로 자신만의 맥주 레시피를 찾아 오딧세이아를 감행한 후 귀촌해 브루어리(맥주 양조장)를 차린 사람이 있다. 잘나가던 IT전문가로 15년 동안 해외에서 메인프레임부터 보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의 전산 프로젝트를 실행하다, 맥주에서 새로운 인생을 발견한 충북 제천의 홍성태(51) 뱅크크릭브루어리 대표가 바로 그다.

정보통신 전문가에서 맥주 양조자로의 변신.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홍 대표는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로 무장한 젊은 친구들과 경쟁을 벌어야 하는 IT업계의 특성상 어느 순간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에서 인생이모작을 하자는 결단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맥주를 화두로 삼은 그는 본격적으로 양조업에 뛰어들기 전까지 세계의 다양한 맥주를 섭렵하였고, 지난해 제천에 둥지를 틀기 전까지 2년여 기간을 맥주 양조에 올인한다. 맥주로 유명한 국가를 찾아가 브루어리 근처의 싸구려 호텔을 잡고 출퇴근하며 현지의 맥주 기술을 배우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맥주의 원형을 완성시켜간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그가 내린 결론은 ‘벨기에 스타일’의 맥주와 ‘한국맥주’라는 개념이다. 벨기에 스타일 맥주는 그가 찾는 맥주의 맛을 뜻한다면 ‘한국맥주’는 그가 찾아낸 맥주의 정체성이었다.

자신이 생산할 맥주의 원형을 찾는 여행에서 그는 처음에는 미국맥주를 생각했다고 한다. 수년전부터 불고 있는 국내 수제맥주 붐의 한 축을 미국맥주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현지에서 미국맥주를 공부하면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미국맥주의 40% 이상이 벨기에에서 핵심공정과 기술을 배워다 만들고 있었다”며 “미국 스타일을 쫓는다면 자신도 국내에 있는 110여개의 브루어리 중 하나에 머물 것 같다”는 생각이 벨기에 스타일을 선택하게 된 배경이라고 홍 대표는 말한다.

특히 그는 “벨기에는 우리나라 막걸리의 이양주(두 번 담금을 하는 술)나 삼양주처럼 2차발효를 시키면서 다양한 맛을 만드는데다, 소금을 넣어 신맛을 내는 사우어에일(신맛 나는 맥주)과 1,2년간 장기 발효 숙성시킨 람빅까지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는 곳”이라며 맥주 다양성의 보고라고 말할 수 있는 벨기에를 지향하는 것이 차별화된 맥주를 생산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한국맥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소규모맥주주조장 설비를 찾는 과정에서 생겼다고 말한다. 슬로베니아에 20여일 맥주설비와 양조기술을 보러갔다가, 유명한 맥주도 몰트도 없는 국가였지만 몇몇 홉은 슬로베니아의 자존심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맥주병의 라벨에 ‘슬로베니아맥주’라고 적혀 있는 모습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 맥주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벨기에식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제천 뱅크크릭브루어리의 양조장 내부 모습. 사진은 맥즙을 발효시키는 발효조들.

그 즉시 귀국한 그는 ‘한국맥주’를 꿈꾸며 지난해 영국에서 400그루의 홉을 수입해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신의 홉을 맥주에 넣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는 5000그루를 수입해 브루어리가 들어선 마을 농부들과 함께 작목반을 만들어 마을 자체를 홉 마을로 육성시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홉은 쌀보다 10배 정도의 부가가치가 있어, 자동화설비를 도입하면 노령의 농부들도 충분히 농사지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맥주의 핵심재료인 홉을 자체 충당할 수 있게 되면 슬로베니아 맥주처럼 당당하게 ‘한국맥주’라는 라벨도 부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홉 농사를 지으면서 그가 만든 맥주는 벨기에에 있는 브루어리 어느 곳에서나 만들고 있는 블론드와 브라운. 그리고 4.5%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봄’을 상표등록 중이며, 보통 맥주의 쓴맛보다는 풍미와 아로마를 살리는 벨기에 스타일 맥주 중 그나마 쓴맛을 가지고 있는 페일 에일도 조만간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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