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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우리술 31]이기숙 명인 손에서 부활한 평양 대표술 ‘감홍로’
[응답하라, 우리술 31]이기숙 명인 손에서 부활한 평양 대표술 ‘감홍로’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7.04.30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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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문제로 명인 지정까지 12년 가시밭길 같은 술빚기 인생

파주에 술도가 내고, 전통 고수하며 아버지가 물려준 술 이어

   
▲ 1980년에 이경찬 명인이 직접 빚었던 감홍로. 뒤쪽 왼편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문배주도 보인다. 뒤쪽 오른편 사진에서 등을 진 사람이 이기숙 명인의 아버지 이경찬 명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본인의 의지가 없다면 소용없다는 뜻을 전달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관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 평안감사의 뒷배에는 우리 술 ‘감홍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잘 모르고 살고 있다.

감홍로(甘紅露). 술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이 술은 붉은 색을 띠는 달고 맛있는 증류주를 의미한다. 원래 우리나라는 남쪽은 막걸리와 청주가 강세이고, 북쪽은 높은 도수의 소주가 중심인 술 문화를 가지고 있다. 고려 때 몽골을 통해 증류주 내리는 방법이 전달됐기 때문에 평안도와 함경도 모두 막걸리 소비는 미미했고, 거의 소주를 내려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평양에서 이름을 떨쳤다는 감홍로였지만 이를 즐길 수 있는 계층은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증류주라 가격이 비싸 그랬을 것이고,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 남쪽으로 이 술이 내려갔을 가능성도 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별주부전>과 <춘향전>에는 감홍로가 등장한다. 용궁으로 토끼를 꾀어가기 위해 거북이가 하는 말이 용궁에는 감홍로가 있다는 말이었고, 한양으로 떠나는 이몽룡과의 이별주를 나누기 위해 춘향이 향단에게 감홍로를 내오라고 말한다. 그만큼 일반 백성들에게 감홍로가 맛있는 술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평양의 대표 술이었던 감홍로가 지금은 파주에서 나오고 있다. 평양에서 평천양조장을 하던 이경찬(1993년 작고) 씨의 딸 이기숙(61) 명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 조선 3대명주의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3대명주는 최남선이 1946년 펴낸 <조선상식문답>에서 소개한 감홍로와 이강주, 그리고 죽력고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을 가진 감홍로를 빚기까지 이기숙 명인이 걸은 길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1.4후퇴 때 내려와 미아리에서 양조장을 하면서 소주를 빚었을 때처럼 고단하기 그지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익어가는 술항아리를 애지중지하던 아버지였어요. 평양에서 20대부터 양조장을 해왔던 강단있던 분이었는데, 술 빚으며 눈물도 보이시더라고요.” 아마도 1954년 양곡관리법이 발효되고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되면서 이경천 명인의 가시밭길이 시작됐다면, 그의 딸이자 감홍로의 계승자인 이기숙 명인의 간난신고는 감홍로의 1차 계승자였던 작은 오빠의 예기치 않은 죽음(2000년)이었을 것이다. 직전 명인으로부터 계승을 받아야 지정될 수 있는 명인제도의 문제점 때문에 이기숙 대표는 12년이나 걸려서야 명인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감홍로는 생산 중인 전통주 가운데 가장 긴 슬로우 푸드 주기를 가진 술이다. 물누룩을 내려 멥쌀과 메조(7대3)를 섞어 고두밥을 지어 세 번 술을 빚어 원주를 발효시킨다. 이 과정은 대략 15일 정도만 끝난다. 멥쌀과 메조를 사용해 신맛 도는 원주를 만들고 이를 소주로 증류시키는데 이 과정이 복잡하다. 1차 소주를 내려 숙성을 시키는데 이 과정이 몇 개월이다. 안정화된 술을 다시 증류해서 용안육과 계피, 진피, 생강, 감초 등의 약초를 넣어 2개월 정도 침출을 시킨다. 그리고 또 1년 6개월을 숙성시켜 병인을 하는 것이 감홍로인 것이다.

   
▲ 평양의 전통주 감홍로를 파주에서 되살린 이기숙 명인이 술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술이 수십 년 동안 사라졌었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에게는 감홍로의 약재향이 익숙하지 않아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스키를 즐기는 외국인들은 술을 더 찾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술 보듯 감홍로를 대한다고 이기숙 명인의 남편 이민형 대표는 말한다. 그럼에도 이기숙 명인과 이민형 대표는 지난 2005년부터 빚을 내가면서도 전통주 감홍로를 포기하지 않았다. 막걸리 붐이 일 때는 막걸리를 만들라는 유혹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주종을 바꿔서 돌파구를 찾으라는 것이었지만 삶의 고단함을 전통주의 가치와 바꿀 수 없었다고 이 명인은 말한다. 이제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이 명인은 감홍로 외에 약재 침출 전의 증류소주를 제품화하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증류소주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데다 약재향에 거부감을 가진 젊은 층에게 감홍로의 원주를 맛보이고 싶어서이다. 감홍로만큼 끝맛이 달큰한 맑은 소주가 새로운 주당들을 파주로 불러 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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