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종로에서 브루어리와 펍을 결합한 수제맥주양조장으로 시작해 독일 카스패리사 양조설비를 인수하면서 규모를 키운 더테이블 브루어리. 사진은 윤재원 대표가 설비를 설명하는 모습.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15년 전 캐나다 여행길에서 마셨던 ‘허니브라운’ 한 잔. 그 맛이 그에겐 인생의 맥주로 남았던 모양이다. 1995년 종각 인근에서 병맥주 전문 펍 ‘산타페’를 부모님이 운영하면서 맥주와 간접적인 인연을 맺게는 됐지만, 이 술 한 잔이 그를 소규모 맥주제조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그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종로에 소규모 맥주제조 설비를 갖추고 수제맥주를 생산한다. 그 첫 작품은 ‘허니브라운’. 당시 거의 모든 브루어리들이 독일 스타일의 맥주인 ‘필바둥(필스너, 바이젠, 둔켈)’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지만, 그는 인생의 맥주였던 이 술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름만으로는 달달한 맥주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홉의 쓴맛을 꿀향이 살짝 가려주면서 마지막 목넘김에서 부드럽게 꿀과 카라멜향이 잠시 머무는 ‘허니브라운’은 햇수로 10년차가 된 이 브루어리의 대표맥주로 자리하게 된다.

대한민국주류대상 IPA(인디언 페일 에일)부문 대상을 2년(2016, 2017) 연속 수상한 더테이블 브루어리의 윤재원 대표가 이 맥주의 주인공이다.

수제맥주 1세대가 채 꿈을 펼쳐보지 못하고 잦아드는 불꽃처럼 사그라지기 시작했던 시절, 그는 오히려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들여 수제맥주 생산자의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필바둥’ 중심의 수제맥주 시장에 ‘허니브라운’으로 신고식을 하고 브루어리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했다.

한마디로 더테이블은 남들과 다르게 시장을 바라보면서 초기 시장진입에 성공을 거둔 것이다.

▲ 더테이블은 펍을 방문하는 고객 이외에도 야유회 및 캠핑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만의 캔 디자인을 마치고 상품화하고 있다. 사진은 더테이블에서 생산중인 캔맥주.

이후 더테이블은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본격양조시대를 준비한다. 지난 2012년, 더테이블은 조선호텔이 코엑스에서 운영하던 오킴스브루하우스의 장비를 인수한다. 국내 100여개의 브루어리 중 3곳 정도에서만 운영하고 있는 독일 캐스파리사의 전자동 양조설비를 사들인 것이다.

이 설비를 인수한 더테이블은 일산에 자가건물을 건축하면서 지하공간에 브루어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재 25종의 맥주(자가양조 15종, 위탁양조 10종)를 생산하는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수제맥주 양조장(발효조 28톤, 숙성조 15톤 규모)이 됐다.

더테이블은 현재 독일식과 미국식, 그리고 벨기에 맥주까지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딱히 정해둔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단 마시기 편한 맥주와 마시는 재미가 있는 맥주 등 고객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 윤 대표가 말하는 더테이블의 양조철학이다. 

그렇다고 매니아들이 즐기는 맥주를 기피하는 것도 아니다. 더테이블펍의 한편에는 이들이 생산하는 ‘고제(신맛과 짠맛이 나는 맥주 스타일)’ 맥주 탭이 자리해, 맥덕(맥주덕후)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쓴맛이 강한 IPA로 두 번 주류대상을 수상한 경력과 더테이블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이 IPA라는 점은 더테이블이 매니아적 요소가 강한 양조장이라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더테이블이 갖는 또 다른 장점은 자신들만의 양조기술연구소를 두고 있다는 점. 베를린대학 출신의 정철 교수팀과 협업을 통해 두 달에 한 번 자신들이 생산하는 맥주의 성분을 분석해서, 자신들의 레시피대로 맥주가 생산되고 있는 지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이러한 노력들이 더테이블만의 맛과 맥주의 품질을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밖에도 더테이블은 야외 캠핑 및 야유회용 맥주 수요를 감안해 캔에 병입할 수 있는 캔 디자인과 5리터 사이즈의 피크닉용 케그 설비도 갖추고, 새로운 수요에 대비하고 있다. 또한 최근 열렸던 와인주류박람회에서 캐나다의 퍼글스 앤 월록 브루어리와 협업을 통해 공동양조한 바 있는 더블IPA도 조만간 ‘서울 트레인’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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