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직장인들이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해야 할 재테크로 ‘연금’을 꼽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연금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얘기다. 연금은 은퇴로 고정적인 소득이 끊긴 상황에서 월급처럼 꼬박꼬박 들어오는 노후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우리나라 연금은 국가가 관리하는 국민연금, 회사가 주는 퇴직연금, 개인이 스스로 준비하는 개인연금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KB국민은행 인재개발부 박 철 팀장은 이 중 노후준비를 시작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올바른 퇴직연금 선택 및 관리 방법을 소개했다.

◆’퇴직연금’ 직장인 맞춤형 노후연금

"국민연금으로 쌀 사고, 퇴직연금으로 반찬 사고 개인연금으로 여행 다닌다"는 소리는 그 안에 각 연금의 특징이나 기능이 잘 함축되어 있다. 국민연금으로 최소 생활비를 충당하고, 퇴직연금으로 일반적 수준의 생활비를 보장받고 개인연금으로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준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3층 연금구조에서 2층에 자리잡은 퇴직연금은 직장인을 위한 연금이라 할 수 있다. 퇴직과 함께 목돈으로 받는 기존의 퇴직금 제도는 퇴직금을 사기나 잘못된 투자로 허망하게 날려버리는 경우가 많아 안정적인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취지를 살리기 힘들었다.

또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를 옮기거나 퇴직금 중간정산을 통해 받은 퇴직금을 생활비·교육비·부채상환 등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퇴직금을 회사 안에 적립하다 보니 부도가 날 경우 퇴직금을 고스란히 날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5년 시작된 ‘퇴직연금제도’는 이런 퇴직금 제도의 단점을 보완해 본래의 취지인 노후소득 보장수단으로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퇴직연금은 은퇴 전에는 퇴직금을 인출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무주택자의) 주택구입이나 가족입원·개인파산 등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중도인출을 허용한다. 또 일정금액(60%) 이상은 의무적으로 금융회사에 맡기도록 하기 때문에 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해도 퇴직금을 모두 떼일 염려는 없다.

퇴직연금은 ▲회사가 운용하면서 근속연수와 급여에 따라 일정한 액수의 연금을 근로자에게 주는 확정급여(DB)형 ▲회사가 매년 근로자의 퇴직연금 계좌에 넣어준 돈을 근로자가 알아서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 ▲근로자가 노후준비를 위해 스스로 추가 불입하는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DB형과 DC형의 가장 큰 차이는 적립된 퇴직금의 운용주체가 누구인가에 있다. DB(Defined Benefit)형은 회사가 운용 책임을 모두 맡는 대신 운용결과가 어떻든 근로자가 퇴직할 때 정해진 퇴직금(퇴직 전 3개월 평균임금×근속연수)을 지급해야 한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퇴직 후에 받게 될 퇴직금 액수가 사전에 확정되기 때문에 ‘확정급여형’이라고도 불린다.

DC(Defined Contribution)형은 근로자가 퇴직금의 운용과 결과에 책임을 진다. 회사가 매년 일정한 적립금(연봉의 1/12)을 부담하지만 원리금 보장상품과 실적배당상품의 비중 조정 등 적립금 운용은 근로자가 알아서 한다. 퇴직금 액수도 운용성과(수익률)에 따라 결정된다. ‘확정기여형’이라는 명칭도 회사의 ‘기여(부담금)’가 사전에 확정된다는 의미다.

지난 2012년 7월 가장 마지막으로 도입된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는 근로자가 이직 및 퇴직할 때 한번에 받는 퇴직금을 노후의 연금 재원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계좌다. 개인이 적립과 운용을 모두 책임지는 유일한 퇴직연금이자 노후자금을 연금으로 수령 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계좌이기도 하다.

◆임금피크제…DB형 연금시장 뒤흔들어

DB형은 여전히 전체 퇴직연금 중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2012년말 17.8%에 그쳤던 DC형 비중이 꾸준히 늘고 2015년부터 최대 300만원까지 세액공제혜택이 추가된 IRP 가입이 급증하며 80%를 웃돌던 비중이 60% 대로 뚝 떨어졌다.

박 철 팀장은 “우리보다 앞서 퇴직연금을 도입한 선진국에서도 초기에는 DB형 비중이 높지만 점차 DC형·IRP 비중이 높아졌다.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퇴직연금의 주류는 DC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DB형에서 퇴직급여를 결정짓는 변수는 ‘임금상승률’과 ‘예상근속기간’이다. 퇴직 직전 받은 월급에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주기 때문에 임금상승률이 높은 직장에서 오래 근무할수록 유리하다.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기간이 많이 남아있는 사회초년생이나 상대적으로 연봉이 많고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니면서 퇴직시점이 임박한 경우라면 DB형이 맞다.

그런데 요즘 확산되고 있는 임금피크제도는 이러한 퇴직연금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DB형을 도입한 회사는 근속연수에 30일분의 평균임금을 곱해 퇴직급여를 계산한다. 30년간 재직한 근로자가 500만원의 임금을 받는다면 현시점에서 퇴직금은 1억5000만원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문제는 평균임금은 퇴직하기 직전 3개월 동안 받은 총 급여를 근무일수로 나누어 산정하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도 적용을 받아 평균임금이 줄면 퇴직급여도 함께 줄어든다. 임금피크제도 대상인 중·장년 직장인이라면 DB형보다 DC형에 가입하는 편이 유리하며 요즘은 임금피크제도 도입과 함께 DC형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임금상승률이 낮은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잦은 이직 등으로 근속기간이 짧은 경우도 DC형을 추천한다.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안내사이트(pension.fss.or.kr) 등에서 연금상품별 운용수익률을 알아본 뒤 본인의 예상 임금상승률과 비교해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DC형은 운용수익이 임금인상률을 넘어야 가입한 보람이 있다. 운용수익은 가입자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운용성과에 따라 나중에 받을 수 있는 퇴직금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성향을 갖고 있고 투자지식이나 경험이 풍부한 경우에 적합하다.

◆노후의 키워드 ‘연금다움을 회복하는 것’

한동안 유행했던 퇴직연금 광고카피 중 “김과장과 송과장은 월급이 똑같다. 퇴직연금도 똑같을까?”라는 것이 있다. 한날 한시에 입사해서 똑같이 출발하고 똑같은 월급을 받는 입사동기들 사이에도 어떤 퇴직연금에 가입했느냐에 따라 연금액수가 달라질 수 있다.

DB형에 가입했다면 임금인상률이 곧 수익률이므로 신경 쓸 일이 없다. 하지만 DC형이라면 투자결과에 따라 연금액수가 변하므로 매년 회사에서 불입한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정해 운용해야 한다. IRP 역시 개인 스스로 퇴직금을 적립하고 운용하는 만큼 개인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

박 팀장은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회사가 운용하는 DB형은 간접투자, 자신이 직접 운용하는 DC형과 IRP는 직접투자인 셈”이라며 “DC형이나 IRP에 가입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가입자 자신이 스스로 금융지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퇴직연금은 도입 10년만인 2015년 적립금이 126조원을 돌파 할 만큼 노후준비의 한 축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08년말 6조6000억원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2012년말 67조3000억원, 2015년에는 107조1000억원대로 불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2020년 300조원, 2030년에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 팀장은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외형적인 성장만큼 내실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5년 12월에 도입된 퇴직연금은 가입자 수가 약 590만명(2015년말 기준)으로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겨우 넘겼다. 해가 갈수록 가입자 수가 가파른 상승공선을 그리고 있지만 아직 근로자 2명 중 1명 정도만 가입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가입자 중 상당수가 퇴직연금 도입 전에 퇴직금을 중간정산으로 받아 사실상 퇴직계좌에 쌓인 금액도 많지 않다. 실제 퇴직연금 가입자 1인당 적립금이 1937만원에 불과하다. 직장인 중 안정적인 연금수급자가 많지 않고 자금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연금이라는 이름과 달리 전혀 연금답지 않다는 데 있다. 퇴직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퇴직금을 연금의 형태로 나누어서 노후에 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제도지만 연금으로 받는 비중이 0.8%에 불과하다. 이름만 퇴직연금이지 기존의 퇴직금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이다.

연금다움을 회복하는 것은 퇴직연금을 활용한 직장인의 노후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박 팀장은 “퇴직연금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개인이 수립한 노후계획에 맞춰 노후자금으로 쓸 퇴직금을 관리하는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라며 “세제지원 확대 등 퇴직연금을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유인을 높이기 위한 정책적 뒷받침과 함께 무엇보다 가입자 스스로가 퇴직연금만큼은 노후생활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중도에 찾아 쓰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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