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거들떠보지 않던 2008년 파주에 술도가 내

2011년 수재 피해, 고려 술 ‘아황주’ 생산으로 재기 

▲ 전통주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일기 전인 2008년에 파주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술도가를 낸 최행숙 대표가 자신의 양조공간에서 술빚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국내산 햅쌀을 사용하고, 인공감미료는 전혀 넣지 않은 ‘프리미엄 막걸리’를 요즘은 찾아 마실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막걸리 붐이 불기 직전이었던 2008년에는 막걸리는 주류 시장에서 천덕꾸러기마냥 하향세를 그리던 술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누구도 사업으로서 막걸리 술도가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좀처럼 찾기 힘든 때였다.

그 시절, 술 한 잔도 입에 대지 못하던 최행숙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건 전통주 술도가(최행숙전통주가)를 파주에 연다. 농촌진흥청 등에서 우리 쌀 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 전통주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있었지만, 일상에선 ‘장수’, ‘생탁’ 등의 대도시 막걸리 정도만 팔렸고, 포천 이동막걸리 정도만 전국적 명성을 날리던 때였다. 특히 술 문화를 이끌던 주당들은 와인과 몰트위스키에 시선이 꽂혀 있어 우리 술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척박한 전통주 시장 환경에도 불구하고 최행숙 대표는 파주 초리골에 30평 규모의 전국에서 가장 작은 양조 사업장을 냈다. 개성에 인접한 민통선 안에서 인삼을 키우는 남편의 인삼과 자신이 배운 술을 연결 지어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인삼을 가공한 부가상품이 별로 없었고, 인삼주 또한 침출주 이외에는 없었던 시절이었다.

인삼을 이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술도가를 냈지만 주변에선 최 대표에게 전통주를 먼저 시작하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술 공부를 할수록 전통주에 대한 매력에 빠져들었던 최 대표는 파주에서 생산되는 햅쌀을 이용한 탁주와 약주인 ‘초리골미인’에 주력한다. 게다가 초리골은 주변경관이 뛰어나 내외국인들의 전통주 체험 장소로도 이름을 날렸고, 친정 오빠가 직접 운영하던 인사동의 전통주점에서 전량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2011년 파주지역에 내린 집중호우에 양조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국내 최초의 프리미엄 막걸리라는 점에서 서서히 명성을 얻어갔으며, 일본에서의 막걸리 붐으로 수출로까지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여름 밤의 꿈’처럼 양조장은 사라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 최행숙전통주가의 대표상품인 아황주와 초리골미인(약주)의 표지 디자인. 한글과 한자를 절묘하게 결합한 디자인은 외국의 디자인 관계자들에게 인기가 있을 만큼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이듬해 현재의 위치(법원읍 사임당로)로 옮긴 최행숙전통주가는 재기의 발판을 아황주(鴉黃酒)로 삼는다. 고려시대부터 즐겨왔던 아황주는 고두밥이 아닌 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반죽한 익반죽으로 밑술을 빚어 덧술에서 고두밥으로 술을 빚는 이양주이다. 궁중에서 사시사철 빚었던 이 술은 찹쌀과 멥쌀을 동시에 사용하고, 다른 술보다 물을 적게 넣어 술의 단맛과 신맛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최 대표가 이 술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2009년 농촌진흥청이 고조리서에 나온 아황주를 실용화하기 위해 주방문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시험양조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  때의 인연으로 진흥청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이전받아 2012년부터 본격 양조에 들어갔으며, 최 대표는 이 술을 대표 상품으로 일궈내 전체 매출의 70%가 아황주에서 나올 정도로 키워낸 것이다.

술도가를 낸지 햇수로 10년이 된 최행숙 대표는 지난해부터 홍삼을 이용한 발효주 연구에 들어가 시험양조를 하고 있다. 순수한 홍삼추출물만을 가지고 발효시킨 이 술은 홍삼 특유의 짙은 암갈색을 띠고 있으며, 첫 모금부터 홍삼 향기가 입에 가득할 만큼 풍미가 있고, 쓴맛과 단맛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약용주이다. 

상품화과정은 인삼공사와의 협의를 거쳐 이뤄질 예정이며, 남편의 인삼농사에서 시작된 최행숙 대표의 대표 술로서 홍삼주가 등극할 날도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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