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 은행연합회장, 새정부에 발전방안 공개 전달

임금유연성 및 겸업주의 등 네거티브 규제방식 제안
 
▲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공지능’과 ‘핀테크’가 연일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예대마진 이외의 특별한 수익원을 찾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는 은행들. 규제는 어제의 기준에 따라 만들어져 있고, 오늘은 ICT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경쟁자들로부터 끊임없는 견제를 받고 있으며, 내일은 어떤 은행이 100년 기업의 역사를 써낼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만 한 산업이다.
1997년 이래 ‘관치’라는 타이틀을 떼고 30년을 달려 왔지만, 은행들은 각종 규제에 묶여 스스로의 상상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있고, 또 타 산업으로 파이가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논에만 물을 대고 몰래 논둑을 무너뜨려 옆 논 물대기를 고의로 막아왔던 30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시점에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이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공개 제안을 내놓았다. 34년 한 우물을 파고, 14년을 ‘은행장’으로 복무한 경험 속에서 나온 하 회장의 속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은 이렇다. 우선 포지티브 규제방식이 아니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하고, 업종별 장벽을 허물어 겸업을 할 수 있도록 사고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며,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임금 유연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는 반드시 금융산업이 지켜야할 덕목만을 지키되 다른 영역에선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다양한 상상력에 근간한 비즈니스 모델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포지티브 규제가 전업주의라고 하 회장은 짚은 것이다. 

국내 은행들의 예대마진 수익비중이 90%에 달하고 있는데, 이는 해외 대형은행들의 60%에 비해 과도하게 편중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해외 은행들처럼 겸업을 할 수 있는 유니버설 뱅킹 시스템으로 가야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야 은행 뿐 아니라 증권, 자산운용, 보험 등을 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외국 은행들과의 경쟁도 그런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고 하 회장은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양질의 일자리와 관련, 하 회장은 어떻게 일자리를 나눌 것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즉 임금유연성을 높여서 피라미드형 임금구조를 해결해야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 회장은 작심까지는 아니어도 34년 은행업에 대한 경험과 격변기 은행업의 역사를 지켜본 입장에서 은행권의 현안을 ‘제안’의 형태로 공론화했다. 

그런데 하 회장의 제안은 그동안 은행권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해왔던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형식은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제안이라고 했지만 실제 내용은 은행권의 묵은 민원 보따리를 풀어헤친 격이 된 것이다. 물론 은행연합회장이라는 자리가 그럴 수밖에 없는 위치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선 유니버설 뱅킹 관련, 논의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산업의 구조 자체가 달리 그려질 수 있는 문제이다. 예대마진 이외의 여타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불확실성에 따른 보수적인 자산운영의 결과이지, 전업주의의 결과가 아니라는 지적도 피해갈 수는 없다. 

은행만을 위한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은행이 금융산업의 맏형이라면 그에 걸맞은 구조조정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와야했을 것이다. 그래야 제 논에만 물대려 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 

이와 함께 임금유연성 문제도 은행권의 오랜 숙제였던 문제이다. 하 회장이 말한 임금유연성의 핵심은 사측과 노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던 성과연봉제. 그런데 이 정책에 대해서는 새정부가 원점 재검토를 이야기해왔던 영역이다.

그렇다면 하 회장은 왜 접점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던 은행권의 오랜 민원 보따리를 정책 제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꺼내든 것일까? 그것도 금융권의 문제와 산업 전반의 문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서 내놓은 것일까? 그리고 은행은 이 논의에서 얻어가기만 하고 내놓을 것은 없는 것일까? 

문제를 풀기 위해선 이런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풀어갈 협의체 제안이 포함돼 있었어야 발언의 진정성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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