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 나누며 격의 없는 소통

 

은행장보다 먼저 입행한 선배 이미지로 다가선 효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힘든 직장 생활을 끝내는 오후쯤이면 문득 하루의 피로를 날리기 위해 소주 한잔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직장 동료들과 아니면 동창 친구들과 한 잔의 술로 고달팠던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가장 쉽게 떠오르는 안주가 삼겹살이다. 육체적으로 힘쓰는 일을 했다면 더 그럴 것이다. 솥뚜껑이든 철판이든 아니면 숯불에 석쇠를 올려놓든 노랗게 구워진 삼겹살 한 점은 자연스레 소주 한잔을 부른다. ‘이게 세상사는 맛이지’하며 술잔을 부딪치면서 말이다.

IBK기업은행 김도진 행장이 지난주 직원들과 삼겹살 벙개를 가졌다. ‘벙개의 신’이라 이름 붙여진 모임이라고 한다. 이 모임은 특정 지역이나 주제별로 관심 있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은행장이 직접 모임을 제안하고 직원들이 참여해 같이 저녁식사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식구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한솥밥을 먹는 식구’는 식사를 같이한 사람들에게 ‘우리’라는 범주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주 한잔까지 곁들이면 ‘우리’라는 단어가 갖는
공동체 의식은 더 강화된다. 그래서 흔히들 술과 밥을 같이 나누면서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김도진 행장이 진행하는 ‘벙개’는 말 그대로 정해지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 중 시간이 되는 사람들만 참가하는 신세대식 만남의 방법이다. 점심이든 저녁이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사람을 만나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겐 정해지지 않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삶의 파격이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예기치 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신선함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 따라 정해진 범주의 사람들을 일정한 주기를 두고 만나는 행사가 아니라 벙개 당일 은행장이 직접 인트라넷에 저녁식사를 예고하고 참여를 원하는 직원들을 선착순으로 모아 같이 식사를 하는 행위 자체가 젊은 세대의 감각에 더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젊은 직원들의 호응도 높을 것이다. 의무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하는 사람만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의 권한이 직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벙개의 실익은 사실상 김 행장의 것이다. 소통의 가짓수를 늘릴 수 있고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은행장이라는 직함보다도 먼저 입행한 선배로서의 사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 등은 김 행장에게도 의외의 영감을 얻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행원들의 입장에서 은행장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나눴다는 추억은 무형의 심리적 자산이 돼 조직에 활력을 넣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격식을 갖추지 않는 비공식성이 갖는 장점을 고스란히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김 행장은 35명의 직원들과 삼겹살을 나눴고, 월요병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도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 행장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가 그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날 직원들이 자신에게 한 이야기들일 것이다. 그것도 소주 몇 순배를 나눈 상황에서 조금은 거칠지만 마음 속 속내를 꺼내듯 내놓는 이야기가 김 행장에게 영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벙개의 신’이 멈추지 않고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직원들도 은행장이라는 높은 벽에 거리감을 두지 않고 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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