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1년 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가 작년 6월 이후 가입자 수가 230∼240만명에서 등락하며 사실상 성장이 멈췄다. 지금 추세라면 2018년 말인 가입기한 종료시점까지 가입자 증가 없이 과거의 재형저축이나 소장펀드처럼 소리 없이 묻힐 가능성이 높다.

자본시장연구원 송홍선 연구원은 “ISA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새로운 금융제도다. 상품의 혁신성이나 소비자 편의성, 경제적 편익 면에서 과거의 정책금융상품과는 분명히 구별된다”며 “정책금융상품의 역사는 ISA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정도로 획기적인 제도이며 ISA는 소비자 후생을 위해서고 계속해서 진화하고 성장해야 할 저축상품”이라고 강조했다.

◆정책금융상품, ISA 틀 안에서 검토돼야

ISA는 예금부터 펀드, 주식, 부동산, 보험까지 담을 수 있는 만능통장으로 불리며 도입 초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나온 비연금성 정책금융상품과 ISA는 두 가지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과거 정책금융상품은 예금은 예금, 펀드는 펀드, 주식은 주식만을 담는 단품 상품이었지만 ISA의 만능통장 기능은 그 자체만으로 소비자 편익 면에서 획기적인 서비스다. ISA의 손익통산기능 또한 저금리 자산관리를 위한 필수요소로 세후 수익률을 실질적으로 높여준다는 점에서 만능통장과는 다른 차원의 중요한 편익이라 볼 수 있다.

송 연구원은 “향후 정책금융상품은 비과세, 소득공제, 세액공제와 상관없이 만능통장과 손익통산 두 기능을 전제로 고려돼야 소비자 후생에 후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앞으로 출시될 정책금융상품은 ISA의 틀 속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입률이 정체돼 있는 ISA 제도가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일반 정책금융상품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저축증대’ 목적에 기여해야 하며 실효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자산관리’ 개념을 함께 강화시켜야 한다.

특히 ISA의 중도인출 정책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중도인출은 소비자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장기저축에 가입하는 소비자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국내 IRP를 봐도 중도인출과 장기저축은 상충관계에 있으며 현실적으로 저축증대라는 정책목표를 훼손하지 않은 범위에서 적정한 중도인출 정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 ISA의 경우 법적으로 인출이 자유롭지만 투자형 ISA는 인출빈도가 낮은 반면 예금형 ISA는 인출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영국은 국민의 30∼40%가 ISA에 가입하고 있지만 예금 ISA의 잦은 인출 때문인지 저축률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저축률을 높이기 위해 중도인출하고 다시 불입한 금액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인출정책과 장기저축 개념을 새롭게 도입했다. 기존 범용 ISA는 인출이 자유롭지만 지난 2015년 도입한 ‘라이프타임 ISA(LISA)’는 생애첫주택 구입이라는 특정목적을 위한 인출 외에는 은퇴시점인 60세까지 어떠한 인출도 할 수 없게 제한하고 있다.

◆학자금, 주택마련 등 특정목적 가진 ISA 필요

ISA에 중도인출을 허용할 경우 인출을 위한 별도의 목적성 ISA가 필요하며 해당 상품에 적합한 필요저축기간과 인출제한을 목적에 따라 차등시켜야 한다.

송 연구원은 대표적인 목적성 ISA로 ‘학자금 ISA’와 ‘생애첫주택 ISA’를 제안했다.

영국은 2005년 어린이펀드, 2011년 주니어 ISA 등 어린이를 위한 저축 프로그램에 유독 관심이 많은 나라다. 미국처럼 대부분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조달하는 영국에서 어린이 저축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고등교육비 마련이 아닌 저축습관 형성을 위해서다. 부모나 친척으로부터 받은 푼돈을 저축하는 습관이 나라의 저축률을 장기적으로 결정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달리 저축으로 학자금을 조달하는 우리나라는 교육자금 목적으로 부모들이 저축할 동기가 명확히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학자금 ISA가 도입되면 어린이 저축습관 형성과 학자금 조달이라는 두 가지 목적에 부응할 수 있다. 부자들의 증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은 영국의 LISA처럼 학자금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될 경우 국가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사후적으로 환수하는 안전장치를 통해 통제할 수 있다.

또한 국내에 주택 ISA 도입이 정당화 되려면 주택 목적의 저축동기가 상당하고 주택시장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저성장, 인구구조 등 장기적인 불확실성 요인이 있고 소유에서 임대로 주택시장 흐름이 바뀌고 있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 사례를 보면 정책 수요층을 명확히 하고 인센티브를 적절히 제공할 경우 주택시장 안정과 가계저축 증대에 도움이 된다.

생애 첫 주택구입자는 대부분 실수요자로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수요기반이 형성되면 주택시장의 장기적인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영국의 주택구입용 ISA(LISA)가 대표적으로 LISA는 실거주 목적으로 생애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할 때 정부가 지원해 주는 저축상품이다. 영국은 저축으로 집을 사기보다는 모기지로 집을 사는 사회지만 생애 첫 주택구입자는 비과세와 보너스라는 강력한 재정지원을 통해 주택구입을 위한 저축 동기를 견인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축으로 집을 사는 경향이 강하고 LTV 한도도 낮아 주택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저축할 동기가 훨씬 강하기 때문에 생애 첫 주택구입자에 대해 비과세와 보너스를 병행한 생애첫주택 ISA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수 있다.

◆국내 ISA 규모…정부 예측치의 10%에 불과

현재의 ISA 제도는 세제혜택과 제도설계 간 불균형이 존재한다.

ISA 불입한도는 연간 2000만원, 5년 누적 1억원이다. 불입한도까지 저축을 유인하려면 강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하지만 세제혜택은 5년 누적 금융소득 중 200만원까지 비과세, 그 이상은 9.9% 저율 과세할 뿐이다.

단순 계산해보면 200만원 비과세는 연간불입한도 2000만원을 5년 유지할 때 현 금리 수준에서 얻는 금융소득이다. 5년 동안 1억원을 저축하도록 가입한도를 설계하고 비과세는 일년치 금융소득에만 주고 있다.

세제당국과 금융당국간 역할에도 상당한 불균형이 보인다.

세제당국은 ISA에 따른 조세지출 규모를 전적으로 결정하고 금융당국은 조세지출 예산 아래 제도 개선을 책임지는 구조가 돼야 한다. 올해 조세지출 예산서에서 ISA 조세지출은 1100억원으로 배정돼 있지만 지난 3월 ISA 현황 통계를 기준으로 조세 지출액을 추정하면 약 116억원에 불과하다,

배정 예산은 1100억원인데 실제 감면액이 116억원이라는 것은 현재 ISA 시장규모가 정부 예측의 10%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 된다. 이 같은 결과는 신규가입자 정체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비과세 한도 확대나 가입자 요건 완화 등을 통해 전향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좀 더 근본적으로 ISA 비과세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11개 저축지원 조세지출 항목도 함께 재검토해야 한다.

지금의 저축지원 조세지출 체계는 저금리·저성장·계층별 저축률 양극화 흐름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다. 비과세 조세지출 항목은 예금상품 중심이며 특정계층에 대한 중복지원과 실효성 약화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조세지출 정책수단의 다양성도 부족해 저축 여력이 없어 저축을 할 수 없는 저소득층의 저축증대에 조세지출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할과 항목을 단순화하고 비과세 체계를 정비하는 동시에 이 과정에서 ISA의 역할과 예산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저소득층을 위한 한국형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 ISA’도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 저소득층 ISA를 도입한다면 초기부터 저소득층 저축부족의 주요 원인인 저축 여력부족을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저축여력이 없는 계층에게 비과세나 소득공제는 부차적인 것이며 이들에게는 저축을 할수록 재정지원을 더 받을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하다.

송 연구원은 “생애 첫 주택구입이나 학자금 ISA 등 저축동기가 명확한 부문에 영국과 같은 매칭제도를 도입하고 자산관리 개념을 적용한다면 자기 출연금은 저위험 ISA로, 매칭 출연금은 중위험 이상 ISA 등으로 배분할 수 있다”며 “또한 해당 저축을 사회복지 혜택을 위한 소득이나 자산심사에서 제외시킬 경우 저소득층의 저축 유인을 실질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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