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퇴직연금이 도입된 지 11년이 지났다. 하지만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147조원에 이르는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 비중은 국내 전체 사업장의 17%에 불과한 수준이다.

지난 2014년 정부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중소기업이 근로복지공단의 퇴직연금기금제도에 가입할 경우 3년간 재정 지원을 해준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퇴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보험연구원은 “퇴직연금시장의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이 매우 저조해 퇴직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퇴직연금제도의 퇴직급여 단일화와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 확대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와 노후소득 보장 강화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저금리 대출 등 퇴직연금 유인책 만들어야

우리나라는 대기업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87%에 이르는 반면 30인 미만 사업장은 15%, 근로자 10인 미만 사업장의 도입률은 12%에 불과하다<표 참조>.

현재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과 달리 퇴직급여제도가 단일화되어 있지 않고 퇴직금제도, 퇴직연금제도 등으로 이원화돼 있어 당장 퇴직연금제도를 일원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퇴직연금을 가입하는데 따르는 비용과 퇴직연금 가입절차의 복잡성, 근로자의 낮은 금융지식 등이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률을 더욱 저조하게 만들고 있다.

해외에서는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재무적, 비재무적 지원정책을 시행 중이다.

재무적 지원은 주로 사용자에게 자금대출이나 자금보조 형태로 제공되며 근로자에게는 기여금을 매칭해주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예들 들어 미국은 근로자 100명 이하의 사업장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관리비용, 근로자 교육비 등 제도운용비의 50%를 3년간 세액공제 해주는 방식으로 제도운영자금 일부를 보조해준다.

퇴직연금제도 도입이나 운영과정에서 소요되는 사용자들의 기여금과 운영자금 등을 지원해 주기 위한 특별대출도 운영하고 있다. 실제 대만에서는 퇴직연금제도 도입에 따른 중소기업의 재정부담 가중을 고려해 기여금과 운영자금 재원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퇴직연금 프로젝트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중소기업의 저소득 근로자가 퇴직연금제도에 가입하면 근로자가 납입하는 기여금의 일정비율을 정부에서 개인계정에 기여해주고 있다.

호주는 연소득 3만1920 호주달러(한화 약 3500만원) 미만인 근로자가 퇴직연금 가입 시 정부가 기여금의 100%(연 1000호주달러 이하) 개인계정에 추가로 납입해준다. 일본은 지난해 8월부터 10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 근무하는 저소득 근로자가 개인형 DC제도에 가입하면 근로자의 기여분에 매칭해 보험료를 추가 납입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자동가입∙서류면제 등 간소화로 편의성 ↑

재무적 지원뿐만 아닌 시스템 구축 및 교육과 같은 비재무적인 지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등은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달리 별도의 차별화된 운영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비재무적 지원을 보다 강화하는 추세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이 임의가입인 반면 영국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자동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자동가입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또한 복잡한 가입문서를 면제하거나 단순화시켜 가입 편리성을 제고하는 한편 사용자가 최초로 근로자를 채용할 때 채용과 관련된 사용자 의무사항을 알려주는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운용에 필요한 서비스를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있다.

교육 면에서도 대기업 근로자에 비해 중소기업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투자정보 및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가입자 교육을 보다 강화시키고 있다.

일본은 국민연금기금연합회, 영국은 연금상담서비스센터(TPAS) 등에서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연금교육 프로그램 개발 및 제공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용자가 의뢰할 경우 퇴직연금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운용지시가 없을 때 특정 투자상품으로 자동 운용하는 디폴트 옵션제도나 최소한의 수익률을 보증해 주는 제도도 눈에 띈다.

미국, 영국, 스위스,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우리나라와 달리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저소득 근로자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자동형 퇴직연금제도나 최소한의 수익률을 보증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보험연구원 “퇴직연금 도입에 따른 중소기업의 운영자금 부족 등을 고려해 대만의 사례와 같이 퇴직연금을 도입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운영자금을 저리 또는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퇴직연금 특별대출제도(가칭)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중소기업 재정지원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획일적인 재정지원보다 사업장 규모를 고려해 재정지원 의 수준을 차별화하고 재정 지원의 시한을 보다 확대하는 방식도 고려해봐야 한다.

보험연구원 류건식, 이태열 연구원은 “국내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사업장을 근로자 10인 이하 사업장, 11인∼ 20인 이하 사업장, 21인∼ 30인 이하 사업장 등 규모별로 세분화하고 영세사업장일수록 지원혜택을 확대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며 “또 중소기업의 DC형 제도를 하나로 모은 ‘집합형 DC’ 형태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제도를 운용하고 스위스처럼 최소한의 수익률을 보증하는 제도적 장치도 신중하게 검토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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