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시종 대표, 잃어가는 강릉 막걸리문화 복원

욕심 없이 소박하게 빚어 원하는 만큼 파는 술도가

▲ 전직 언론인이자 시인인 이시종 방풍도가 대표. 강릉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텔링을 술로 승화시켜 ‘도문대작’이라는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조선시대 강릉은 문향이다. 신사임당은 물론 허난설현과 허균 남매, 그리고 그의 아버지 허엽 등, 당대의 명문장가를 배출한 지역이니 문향의 별호를 얻은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강릉은 강원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쌀로 술을 빚었던 고장이기도 하다. 태백준령의 서쪽은 논을 쉽게 찾을 수 없었지만 동해안은 7번 국도를 따라 좁지만 길게 평야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만에 강릉을 다시 찾았다. 새롭게 술의 고장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술 뿐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의 상징물인 커피의 본향이 된 듯싶다. 안목 해안을 따라 늘어선 커피숍은 도회지 한복판을 옮겨놓은 듯하다. 보이는 건물엔 모두 커피숍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강릉이 새롭게 술의 고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은 사라진 술도가 강릉합동주조를 대신해서 그 자리에 수제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가 들어섰고, 추억 속의 강릉합동을 대체할 막걸리 ‘도문대작’이 수년전부터 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 방풍도가의 숙성실에서 익어가고 있는 도문대작. 앞 쪽 항아리의 안에 다 익은 술이 향기를 가득 내뿜고 있다.

‘도문대작(屠門大嚼)’. 조선의 불운한 천재이자 자유주의자였던 허균이 불우했던 시절, 자신이 과거에 먹었던 음식을 생각하며 쓴 음식비평서의 이름이다. 그 뜻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 정도. 전국을 주유하며 낭만가객을 마다하지 않았던 허균이 광해군 3년 전라도 땅에 귀양 가 과거를 회상하며 맛을 그리워했던 흔적인 것이다. 

이 책의 첫 구절에 자신의 고향 강릉에 나는 갯방풍나물로 끓인 방풍죽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 방풍나물은 봄철 잠깐 동안 우리 식탁에 오르는 나물이다. 풍을 막아주는 식물로 알려져 있으며, 강릉 바닷가에는 허균의 말대로 갯방풍나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문향 강릉의 스토리텔링을 근간으로 풍을 막는다는 약성과 강릉의 쌀로 술을 빚어 만드는 막걸리가 바로 ‘도문대작’이다. 이 술을 빚고 있는 술도가의 이름은 ‘방풍도가’, 술을 빚는 이는 이시종 대표이다. 전직 언론이자 시인인 이 대표는 우연하게 익힌 술빚기를 토대로 문향 강릉의 문화 콘텐츠를 하나 더 더했다. 이 같은 이 대표의 행보를 보면 술은 단순하게 알코올만을 즐기는 음료가 아닌 게 분명하다.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지면서 새롭게 생명력을 확보하면서 강릉 술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술은 문화와 문명을 연결시키는 통로이며, 술에 보태지는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을 보다 강력하게 연결시키는 그물망임에 틀림없다.

보통의 막걸리가 알코올 도수 6도임에도, 이 대표의 ‘도문대작’은 10도의 술을 빚어낸다. 알코올감이 높은 만큼 술의 향은 강하다. 술이 익어가는 발효실과 숙성실에는 자두와 복숭아 등의 향기가 가득하다. 술을 마시면 목넘김 이후 방풍나물의 쓴맛도 느껴진다. 연간 사용할 방풍나물은 봄철에 수매해서 건조해두고 덧술을 하면서 술에 넣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술에는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도시 막걸리에서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방법을 이 대표는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의 소박한 술빚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의 숙성실을 채우고 있는 항아리의 숫자는 그의 술맛만큼 변함이 없다. 일흔을 넘긴 그의 나이만큼 그는 욕심 부리지 않고, 빚을 수 있을 만큼 빚어 원하는 사람들이 찾아 마시도록 하는 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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