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서 명인의 아들 박관천(기능 전수자) 대표가 ‘명인안동소주’를 소개하고 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주당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전통주 브랜드는 아마도 안동소주일 것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정부가 전통주 살리기에 나서면서 가장 먼저 상업양조의 길을 걸을 이유도 있겠지만, 소주와 관련한 오랜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 첨언한다면, 초기 전통주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로서의 시장 선점 효과를 거두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한 사연도 한 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술 좋아하는 주당들은 이 술을 통칭 ‘안동소주’로 기억하고 있지, 이 술을 만드는 곳이 7곳에 달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지자체에서야 표를 의식해서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안동소주’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겠지만, 주당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두어 가지 정도의 소주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입맛은 까다롭기 그지없는 것 같다.

물론 안동소주는 이 지역의 양반가에서 오랜 세월동안 빚어 증류한 술이기에 그 종류는 술 빚는 집의 숫자만큼 다양했다. 봉제사접빈객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술이었던 만큼 가양주의 전통으로 다채로운 맛을 내는 술을 빚어왔을 것이다.

이렇게 며느리의 손맛으로 이어져 내려온 안동소주 중, 가장 성공한 전통주라고 평가 받는 술은 박재서 명인(식품명인 6호)의 ‘명인안동소주’이다. 반남박씨의 가양주로 내려온 술을 박재서 명인이 상업양조로 길을 트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안동소주의 맛이 알려지게 됐고, 그것이 초기 시장 선점효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박 명인이 주류면허를 취득한 시점은 1992년. 당시 40억 원 자본금으로 86억 원을 투입, 2만평 대지에 건평 3000평 규모의 공장을 짓고 영업에 들어간 명인안동소주는 90년대 말까지 연간 2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다. 2000년 들어 이마트,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켓이 ‘갑’의 위치에서 유통을 장악하면서 박 명인의 신화가 꺾이게 됐지만 말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명인안동소주는 현재 전통주 업계 최대 규모의 공장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0년 현재의 위치(경북 안동시 풍산읍)로 이전한 공장은 처음 설립한 공장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여전히 2000평 규모의 공장 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명인안동소주가 전통주 업계 선두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공장의 규모에 있지 않다. 

박재서 명인은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소주의 대명사처럼 불리던 제비원 소주의 기술을 접목시키고 증류주의 수율을 높이기 위해 발효주의 알코올 도수를 최대한 이끌어낸다. 또한 전통 증류법에 의해 내린 소주가 화독내라는 단점을 가지고 있어 젊은 층에게 충분히 소구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증류법도 감압식을 선택하는 등 철저히 시장성을 감안한 술맛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을 보면, 2014년에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의해 촉발된 ‘안동소주 대란’도 근거 없이 발생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한 네티즌이 명인안동소주를 마시고 그 맛에 놀라 올린 글 하나가 품귀현상까지 이어졌으며, 물량이 달려 일반 녹색소주병을 사용하는 소주제품까지 등장할 정도로 당시 인터넷은 안동소주로 뜨겁게 달궈졌었다.

▲ 명인안동소주는 위스키와 경쟁을 하기 위해 오크통 숙성을 하고 있는데, 사진은 공장 지하공간에 있는 오크 숙성실 모습.

명인안동소주의 특징은 안동지역의 쌀을 사용한다는 것과 숙성을 시킨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원주인 발효주의 알코올도수가 22도에 달한다는 점도 독특한 부분이다. 

맛있게 빚는 가양주의 전통처럼 삼양(세번 빚음)을 하는데다, 발효와 숙성에 40여일을 투자한다. 특히 처음 일주일 이후에는 21도의 저온에서 발효 숙성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렇게 빚어진 발효주를 감압 방식을 사용해 증류해서 최소 100일 동안 숙성한 술을 시장에 내고 있다. 물론 위스키와 경쟁하기 위해 오크통에서 18년 숙성시킨 술도 있으나 100일 숙성된 술로도 충분히 주당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충분한 맛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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