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하 대표, 독학으로 맥주양조 배운 여성 최초 양조사

10여년의 빙하기 견뎌낸 내공으로 새 지평 개척하는 중

▲ 남자들도 힘들다는 맥주양조. 그래서 전국 소규모 맥주양조장에 여성 양조사는 한손으로 꼽을 만큼 드물다. 김정하 대표는 독학으로 맥주를 배워 자신만의 맥주를 만들고 있는 국내 최초의 여성 맥주양조사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제공 : 바네하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술은 만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 양조사가 빚어내는 술은 어딘가 모르게 배려를 느낄 수 있다. 부드러운 술맛과 낮은 알코올 도수, 그리고 밸런스 등이 음용감을 높여준다는 뜻이다. 

2002년 월드컵과 함께 국내에 하우스맥주 시장이 열렸지만 아직 시장 조성기에 불과했던 시절, 한 20대 여성이 독학으로 상업양조에 도전한다. 펍(Pub) 한편에 맥주양조 설비를 갖춘 하우스맥주 집들이 숫자를 늘리고는 있었지만 남성 양조사들도 일이 버겁다고 손사래를 치는 일이었다.

게다가 창업 이듬해인 2005년 하우스맥주 집이 150여개에 달하는 따뜻한 봄날을 잠시잠깐 맛보긴 했지만, 30여개까지 줄어드는 10여년의 기나긴 빙하기를 살아남아야 했다. 건물주도 아니었고 든든한 뒷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려운 순간을 맞을 때마다 먼저 맥주를 공부한 선배들에게 물어 자신만의 맥주 지평을 넓혀온 브루하우스 바네하임(서울 공릉동) 김정하(37세) 대표의 이야기다.

전문적인 맥주양조 교육기관이 없기는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 그나마 지금은 집에서 자신만의 맥주 양조가 가능할 만큼 기기와 재료가 보편화돼 있다. 하지만 당시는 홈브루잉마저도 낯설던 시절. 따라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 해법을 찾거나 선배들에게 질문을 던져야했다.

그렇게 배운 김 대표의 맥주가 올 4월과 5월 각각 일본과 호주에서 열린 맥주대회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받았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상업양조를 하는 양조사들에게도 힘든 일을 연거푸 이뤄낸 것이다. 일본 대회(아시아 비어 컵)에서 은메달을 받은 맥주는 지난해 9월부터 빚고 있는 몰트감을 강조한 ‘란드에일(아이리시 레드에일)’이었으며 세계 3대 대회로 알려진 호주 국제 비어어워드에서는 스타우트 부문에서 바네하임의 대표 맥주 중 하나인 노트에일이 동메달을 받은 것이다.

올부터 김 대표는 위스키 증류를 배우고 있다. 문경에서 오미자 와인을 만들고 있는 이종기 박사가 올해 처음 개설한 증류아카데미를 바쁘게 오가면서 자신의 술 세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맥주는 계절적 요인이 강하잖아요. 겨울에 바네하임을 찾는 고객들에게 바네하임 싱글몰트 위스키와 맥주를 같이 제공하고 싶어요.” 그가 위스키를 빚는 까닭이다. 물론 위스키를 상업양조로 키울 생각은 없단다. 자신의 브루어리를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아이템 정도로 싱글몰트를 조심스럽게 꺼내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꽃을 맥주에 적용한 계절맥주도 만들어내고 있다. 봄에는 벚꽃을 콘셉트로 잡아 경쾌한 맛을 내는 '벚꽃라거'를 제조했으며, 장미의 계절에 맞춰 ‘장미에일’을 여름 시즌맥주로 만들고 있다. 이밖에도 독일의 하면발효맥주인 복(Bock) 스타일의 맥주도 손대고 있다.

그녀의 술에 대한 열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제맥주 업계가 또다시 빙하기를 맞지 않으려면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이에 따라 그는 얼마 전  마감한 광화문정책1번가에 15년간 맥주를 빚어오면서 느껴왔던 불공정한 요소와 수제맥주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한 수입맥주의 문제 등을 정리해서 제안했다고 한다.

▲ 하우스맥주 1세대로 수제맥주 업계에 들어선 김정하 대표의 바네하임 브루펍의 내부 전경. 격자 유리벽 넘어에 쌓아둔 몰트와 양조시설이 보인다. <제공 : 바네하임>

“관세가 낮아진 수입맥주에는 판매관리비용이 주세에 포함되지 않지만, 국내 맥주에는 이 비용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게다가 주세는 종가세인데다, 맥주에 대한 주세는 72%에 달해 세제 자체가 좋은 맥주 생산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의 설명 속에 국내 맥주 시장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올 연말까지 다시 맥주양조장의 숫자가 100여개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곤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국내 최초의 여성 맥주양조사, 김정하 대표의 맥주가 바네하임(게르만어로 풍요의 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책 제안이 빛을 발해 지역 양조장으로 깊게 뿌리내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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