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6월 9일 시행된 퇴직연금 투자자문업자에 대한 수탁자 개정안을 올해 말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 1일부터 정식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미국의 퇴직연금 투자자문업자의 수탁자 의무 부여 및 시사점'을 분석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은 퇴직연금 수탁자 규정을 개정하며 퇴직연금 관련 투자자문을 제공하는 모든 금융전문가를 수탁자로 정의하고, 수탁자에게 고객의 이익을 최대화하도록 요구함으로써 잠재적인 이해상충 가능성을 제거했다"고 설명했다.

◆40년 만에 미국 퇴직연금 수탁자 규정 손질

미국 노동부에서 제정한 퇴직연금 투자자문업자에 대한 수탁자 규정은 금융산업계와 소비자단체간의 오랜 논쟁 끝에 올해 6월 9일 시행됐다.

개정된 수탁자 규정은 1974년 제정된 근로자 퇴직소득보장 하의 ‘수탁자(fiduciary)’ 정의를 확장해 세제혜택이 있는 퇴직연금을 취급하거나 자문을 제공하는 모든 금융전문가에게 수탁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새로운 기준을 통해 수탁자에 해당하는 금융전문가는 수탁자에게 요구되는 법적·윤리적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며 무엇보다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큰 책임과 의무가 부여되는 수탁자 규정 개혁은 순조롭지 않았다. 지난 2010년 일련의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규제비용 및 책임비용, 고객의 우려 등 금융산업계로부터 극심한 반발에 부딪친 후 결국 2011년 철회됐다. 하지만 지난 2015년 2월 버락오바마 대통령이 대규모 개혁안을 제안함에 따라 두번째 개혁안이 마련됐고 2016년 4월 8일 최종안이 발표됐다.

지난 1975년 이후 미국의 퇴직연금시장은 DB플랜에서 DC플랜으로 중심이 이동했으며 IRA 시장이 확대되는 등 큰 변화를 보였다. 개인은퇴계좌인 IRA의 경우 세제혜택과 유연성 등을 장점으로 시장규모가 빠르게 확대됐으며 DB 및 DC플랜에서 IRA로 롤오버(rollover)하는 현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미국은 퇴직연금시장 구조가 변화하며 1975년 당시의 수탁자 기준으로는 투자자 보호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퇴직연금 관련 자문서비스에 높은 수수료가 주어지는 당시의 보수구조는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고 금융전문가가 고객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투자조언을 제공할 유인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3월 발표된 GAO보고서는 IRA로 롤오버 시 투자자가 언제나 자신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권유를 받는 것이 아니며 금융회사의 IRA마케팅이 투자자를 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2월 CEA보고서 또한 이해가 상충되는 자문으로 IRA투자자가 부담하게 되는 비용이 연간170억달러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2016년 개정된 수탁자 규정은 투자자문에 대한 1975년 정의를 대체하는 것으로 당시 정의에서 투자자문여부 결정에 주요 근거가 됐던 ‘주기적인 자문제공’ 요건이 삭제되고 적용되는 퇴직연금제도에 ‘IRA’를 포함시켰다.

투자자문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인 보수를 받는 것을 대가로 유가증권 및 기타재산의 매매 ▲IRA를 포함한 퇴직연금으로부터 분배금 지급의 타당성 ▲IRA를 포함한 퇴직연금으로부터 롤오버 후 유가증권 및 기타재산의 투자 ▲롤오버를 포함해 유가증권 및 기타재산의 운용과 관련된 자문으로 재정의했다.

◆수수료 기반 자문업계….보수 기반으로 이동 가속화

현재 미국은 적합성 원칙의 근거가 되는 ‘FINRA Rule 2111’을 통해 투자자에게 권유한 거래 또는 투자전략이 고객에게 적합하다고 믿을만한 ‘합리적인 근거’를 요구하고 있다.

만약 퇴직연금 투자자문업자가 수탁자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투자 권유 시 적합성 기준만 충족하면 되지만, 수탁자로 지위가 변경되면 적합한 투자대상을 찾는 것을 넘어 훨씬 엄격한 신인의무를 준수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생긴다.

또 1975년 규정 아래에서는 일반적으로 투자자문업자가 수탁자에게 금지된 수수료 및 기타 형태의 보상을 수취할 수 있었지만 수탁자로 지위가 변경되면 이러한 보수구조 또한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은 새 규정이 시행된 이후에도 퇴직연금 투자자문업자들이 수수료 기반의 영업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최종안에 최선의무계약(BIC) 면제를 포함한 2개의 새로운 면제조항을 도입했다. 

최선의무계약(BIC) 면제조항을 적용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수탁자임을 알리고 공정행위기준을 준수하며 투자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아닌 조언을 함으로써 초래할 수 있는 방식의 보상을 취하지 않겠다는 것을 문서화해 보증해야 한다

고객에게 최선의 이익 기준에 합당한 주의가 투자자에게 제공될 것임을 명시하고, 보수구조(직·간접적 보수 포함)에 대해 설명하며, 자문업자와 그 자문업자가 소속된 금융회사 및 관계회사가 제3자로부터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보수 및 비용을 포함해 중대한 이해상충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또한 공정행위 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채택된 금융회사의 정책 및 권유 받은 거래와 관련된 보수, 비용 및 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공시사항에 대해 투자자가 정보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안내해야 한다.

더불어 해당 금융회사가 고유상품을 제공하는지 또는 권유 받은 투자와 관련해 제3자로부터 지급받는 금액이 있는지 공시하고 금융회사 대리인의 연락처 정보를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한편, 자문업자 및 금융회사가 투자자의 투자를 모니터링하고 변경사항 발생 시 경고하는 방식을 설명해야 한다.

BIC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이 외에도 매우 광범위한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하며 BIC면제를 받고 투자자문을 제공한 경우에도 투자자로부터 소송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전문가들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개정된 수탁자 규정의 일부 내용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존재하지만 향후 수탁자 규정 시행을 통해 미국자문업계가 수수료가 아닌 보수기반 영업활동으로 이동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지난 수년간 ETF를 포함한 패시브펀드가 액티브펀드와 비교해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수탁자 규정 시행은 저비용과 높은 투명성 등 ETF의 장점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심수연 연구원은 “새 수탁자 규정이 시행된 이후에도 수수료 기반의 영업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면제조항을 두긴 했지만 면제요건을 준수하는 것은 상당한 규모의 비용을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며 “결과적으로 소규모 또는 독립 투자매매중개업자들의 어려움이 예상됨에 따라 다른 한편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다양한 기술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의 발전이 촉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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