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경영연구소의 ‘2017 한국부자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자산을 10억원 이상 보유한 한국 부자는 약 24만2000명으로 전년 대비 14.8% 증가했다. 한국 부자인구와 자산은 2012년 16만3000명(366조원)에서 2016년 24만2000명(552조원)으로 부자 수 및 자산 규모가 매년 평균 10%씩 증가하고 있다.

한국 부자들은 자산을 처음 어떻게 형성하고, 그렇게 형성된 자산을 어디에 투자하며, 노후에는 축적된 자산을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본지는 KB경영연구소의 2017 한국부자보고서를 통해 한국 부자들의 자산운용행태 및 노후준비에 대한 인식을 (1) 부동산 (2) 금융 (3) 자산이전 세가지 영역으로 나눠 분석하고 그들을 통해 일반 가계의 자산증식 및 노후준비를 점검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은퇴 후 부자들의 월 생활비는 ‘717만원’

일반가구가 은퇴 후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월평균 생활비는 237만원, 하지만 한국부자들이 은퇴 후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답한 월평균 생활비는 약 717만원(연 8604만원)이었다. 부자들에겐 현재 월평균 소비지출액의 약 86%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지만 일반 가구와 비교하면 3배나 높은 수준이다.

자산규모 별로 살펴보면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부자들의 은퇴 후 적정 생활비는 월평균 1010만원으로 금융자산 5~10억원 보유자보다 487만원을 크게 상회해 보유 자산이 증가할수록 은퇴 후 생활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 연간 가구소득 3억원 이상 부자의 은퇴 후 적정 생활비는 월평균 934만원으로, 1억5000만원 미만 부자(월평균 473만원)과 큰 차이를 보여 은퇴 후 생활비는 소득과도 깊은 비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일반가구와 부자들은 은퇴를 원하는 시점과 실제 은퇴를 하는 시점에도 차이가 났다.

아직 은퇴하지 않은 한국부자들은 자신의 은퇴시점이 평균 66.0세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며 이미 은퇴한 부자의 경우 63.6세에 은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반가구의 예상 은퇴연령은 66.9세로 부자보다 더 오래 일하고 싶어했지만 은퇴자의 실제 은퇴연령은 61.9세로 부자들보다 더 빠른 은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예상시점은 직업별로 다소 차이를 보였는데 부동산 매각을 통해 자신의 은퇴 시점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임대업 종사자는 68.8세로 가장 길었고 전문직 종사자(68.3세), 사업체 운영자 (67.1세), 공직자/경영관리직(63.7세) 순으로 줄어들었다.

소득규모 및 구성측면에서 일반가구와 부자가구는 근로소득, 재산소득, 기타소득 등에서도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부자가구의 평균 연소득은 2억6000만원으로 일반가구의 평균 연소득 4883만원보다 5.3배 높았으며, 소득구성도 일반가구는 ‘근로소득(급여 및 사업소득)’ 비중이 88.5%로 매우 높고 ‘재산소득(부동산·이자·배당소득)’ 비중은 4.5%에 불과한 반면 부자가구는 ‘재산소득’이 31.8%로 상당히 높았다.  

특히 총자산 100억원 이상 부자의 ‘재산소득’ 비중은 50%로 총자산 50억원 미만 부자의 28%를 크게 상회해 보유자산의 규모가 클수록 재산소득 비중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KB경영연구소는 “부자가구의 연평균 소득 2억6000만원 중 재산소득 및 기타소득의 합(39.7%)이 연 1억300만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부자가구의 은퇴 후 월평균 생활비 717만원은 근로소득 없이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규모”라며 “결국 한국부자들은 노후 준비의 목표를 은퇴 후에도 어떻게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것인가의 문제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직∙간접 투자로 든든한 노후준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은 “노후 설계에 대한 기존 접근방식은 완전히 잘못됐다. 이제는 순자산(Net worth)이 아닌 월별 소득흐름(Monthly income)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 시장의 자산군별 수익률을 분석해보면 예금상품의 투자 수익률은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물가상승률보다 낮아지고 있다. 만약 ‘무위험’이라는 이유로 은퇴자산을 예금상품에만 투자할 경우 물가수준 보다 낮은 수익률로 오히려 현금흐름의 불안정성이 증대되는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한국부자들도 저금리 저성장 경제가 고착화되고 있는 지금 이 같은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한국부자의 경제적 은퇴준비 방법은 일반인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일반인은 ‘공적연금(45%)’을 통한 노후준비율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부자의 경우 부동산 활용(35.2%), 직간접투자(13.1%)가 높게 나타나 투자자산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은퇴를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 후 자산관리 방법에 대해서는 ‘부동산 및 예적금’을 통해 자산을 관리하겠다는 응답은 전년 대비 하락한 반면, ‘연금 및 직간접 투자’를 통해 관리하겠다는 응답은 증가해 부자들은 위험을 다소 부담하더라도 적정 소득흐름을 실현하려는 니즈가 점차 강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산 규모별로 보면 금융자산 30억원 이상 부자들은 ‘부동산(71.7%)’ 및 ‘직간접투자(50.0%)’의 활용 비중이 높았으며, 금융자산 규모가 작은 부자는 ‘연금 및 예적금/보험’ 상품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부자일수록 보다 적극적인 투자방식으로 은퇴 자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후 준비의 핵심 자산 중 하나인 연금상품과 관련해서는 한국부자들은 ‘연금보험(75.8%)’에 가장 많이 가입했으며 연금저축(55.4%), 연금펀드(11.7%), 연금신탁(10.2%) 순으로 가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금상품 선택 시 주요 고려사항으로는 ‘투자 성과에 따라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어서(29.7%)’라는 답변이 가장 높아 연금저축 상품도 투자 수익률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세제혜택 연금펀드’(26.6%), ‘약정된 이자로 안정적 수익 가능해서’(11.6%)라는 답변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한편 노후 준비의 장애요인 또한 부자들과 일반인은 서로 다른 인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부자들은 노후 준비의 가장 큰 걸림돌을 ‘저금리로 인한 이자소득 감소’, ‘투자 및 사업 실패’ 등 보유자산의 수익률 저하 및 관리 실패라고 답했다. 반면 일반인들은 ‘물가상승에 따른 생활비 부족’, ‘국민연금 보장기능 약화’ 등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은퇴자산 하락이 노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수성가 힘든 자녀 “재산 상속하겠다”

자녀 세대에 부의 이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부자 중 보유 자산을 ‘자녀’에게 상속 및 증여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95.7%로 가장 높았으며 ‘배우자’(53.2%), ‘손자녀’(12.0%), ‘형제/자매’(6.2%)가 뒤를 이었다.  

반면 ‘사후 법에서 정한 방식에 따라 상속하겠다’는 응답은 0.6%에 불과해 한국의 부자들은 사전에 상속 및 증여 대상자를 스스로 결정하려는 의향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자녀 세대는 과거에 비해 부모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하기 힘들어졌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비율도84.8%로 전년 대비 11.8%포인트 증가했으며 ‘내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나만큼 잘 살기 힘들 것이다’라는 답변도 57.6%로 높게 나타났다.

또 상속 및 증여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17.5%로 전년(42.5%) 대비 크게 하락해 상속/증여에 대한 고민이 계속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속 및 증여에 대해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응답 비중은 서울 및 수도권(12.6%)보다 지방 부자(32.0%)가 높았으며 보유 금융자산 규모가 적은 그룹(18.5%)이 많은 그룹(11.7%)보다 높게 나타났다.

상속 및 증여에 대해 고민해 본 부자 중 77.6%는 ‘자산의 일부는 사전 증여하고 일부는 사후 상속하겠다’고 응답해 대다수가 상속과 증여를 함께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전부 사후 상속하겠다’(13.7%)와 ‘전부 사전 증여하겠다’(6.8%)는 응답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자산의 일부증여 및 일부상속’ 비중은 전년 대비 13.6%포인트 증가해 모든 재산을 조기에 자녀에게 이전하지 않겠다는 인식이 높아졌으며 자녀가 필요한 시점에 일정 부분의 재산을 나눠주려는 인식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신탁업 제한 풀어지면 부자시장 더욱 확대

상속 및 증여를 하기 위한 자산유형으로는 ‘부동산’을 활용하겠다는 의향이 84.3%이 가장 높았지만 매년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어 부동산의 장기적인 투자 매력도에 대한 의구심이 상속/증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반면 ‘현금 및 이에 상응하는 금융상품’을 활용하겠다는 답변은 2013년 조사(66.9%)와 비교할 때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 같은 수치는 부자들이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균형잡힌 자산 포트폴리오를 자녀세대에 이전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정부는 최근 자본시장법에 귀속되어 있는 신탁업의 제한을 풀어 금융자산뿐만 아니라 유언, 특허권, 경영권, 부동산임대업 등 다양한 유무형 자산을 수탁자산에 포함하는 별도의 신탁업법 제정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가족 전체의 자산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와 함께 세금, 법무, 상속/증여 등 비재무적 부분까지 포함하는 종합 자산관리서비스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30억원 이상 부자의 경우 ‘보험’, ‘사업체 경영권’, ‘부동산신탁’ 등을 활용하겠다는 의향이 30억원 미만 보유자 보다 높았으며, 특히 ‘부동산신탁’은 30억원 미만 부자보다 약 3배나 높은 비중을 보였다.

KB경영연구소는 “국내에서 2가지 이상의 자산을 관리하는 종합재산신탁의 계약건수는 아직 20건에 불과하며 한국부자 중 ‘패밀리 오피스’ 이용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중도 36%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며 “하지만 정부의 신탁업 제도 개편이 추진될 경우 단순상품 위주로 운영되는 신탁시장이 부동산과 금전신탁 등을 아우르는 종합재산신탁으로 발전하고 이에 따라 부자들에게 상속 및 증여 수단으로서 신탁의 중요성은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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