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브랜디 맛 능가하는 전통주 ‘고운달·무작·삼해소주’

증류소주 및 국산 원료로 빚은 브랜디 출시돼 시장 풍요해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제의와 술은 하나의 세트처럼 인류와 그 역사를 함께 해왔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종교행사에서 술이 빠진 경우가 없었으며, 관혼상제 등의 각종 행사에서도 술은 기준이 되는 음식물이었다. 코앞에 다가온 추석도 매한가지다. 결실의 계절을 맞은 100년 전 이 땅에 살던 선조들은 차례상에 올리기 위해, 그리고 한가위 잔치를 즐기기 위해 술을 가장 먼저 준비했다. 

근대 산업사회를 넘어 모바일과 디지털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지만 술이 추념과 축하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변함이 없고, 계속될 것이다. 다만 예전엔 직접 빚어 사용했다면 지금은 전문가의 손이나 공장에서 만든 술을 사용한다는 것 정도가 차이일 것이다. 

20세기 초입에 우리 술 문화가 전통과 단절된 이래 100여 년 동안 우리 술은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외국 술에 밀려 뒷방 늙은이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았지만, 21세기 들어 복원되기 시작한 우리 술은 외국의 명주를 능가하는 새로운 술로 환생하고 있다. 

대형주류 회사들도 고급 전통주 시장이 형성됨에 따라 좋은 술을 내고 있지만, 규모는 작지만 탁월한 맛의 명주를 빚어내는 재야의 숨은 고수 같은 술도가들의 술들도 귀한 선물로 주고받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또한 서울의 청담동과 홍대 및 압구정동 등 전통술을 취급하는 주점에서도 위스키와 브랜디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추석을 앞두고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 오미자 와인을 증류해서 만든 오미자 브랜디 ‘고운달’. 국내 최고의 마스터블랜더 이종기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제조한 술이다. 국내 전통주 중 최고가 타이틀을 가진 만큼 술맛은 주당들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하다. <제공 : 오미나라 홈페이지>

문경 오미나라의 ‘고운달’
전국 생산량의 40% 정도가 문경에 집중돼 있는 오미자로 로제와인(스틸 및 스파클링)을 만든 이종기 박사(오미나라 대표)가 심혈을 기울여 지난해 발표한 브랜디다. 국내 최고의 마스터 블랜더였던 이 박사의 ‘고운달’은 와인을 증류해 만든 브랜디(코냑 및 알마냑)들과 견주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는 평가를 들을 만큼 향과 맛 모두 주당들의 눈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위스키(윈저, 골든블루, 블랙스톤 등)의 이름만 봐도 그 술맛을 충분히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만큼 ‘고운달(알코올 도수 52%)’은 국내 최고가 증류주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물론 술값이 비싼 이유는 오미자의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6년을 도자기에서 숙성한 화이트 버전과 5년 정도를 백자에서 숙성시킨 뒤 1년을 오크통에서 숙성한 오크통 버전 두 종류가 있다.

오미자와인을 증류한 만큼 농축된 오미자 향이 먼저 다가오고 목넘김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그리고 다시 코로 넘어오는 향은 달큰하다. 백자버전은 단백하고 깔끔하다면 오크통 버전은 약간의 강하지 않지만 오크향이 화장기처럼 향으로 다가온다.

▲ 강원도 홍천 예술주조에서 빚는 전통주 방식의 증류소주 ‘무작’ 100일 동안 발효숙성시킨 원주의 맛을 최대한 이끌어낸 무작은 여느 외국산 위스키와 브랜디에 뒤지지 않는 탄탄한 맛과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 <제공 : 예술주조 홈페이지>

홍천 예술주조의 ‘무작’
로스쿨 교수를 그만 두고 홍천에서 술도가를 운영하는 정회철 변호사(예술주조 대표)가 지난해 초에 발표한 술이다. 예술에서 만드는 술은 기본 100일 숙성을 거치는 막걸리와 우리식 맑은 술이다. 석탄(惜呑, 마시기도 아까운)향을 지향하는 정 대표의 술을 단식증류기로 증류해 53%의 알코올 도수로 낸 전통 소주가 바로 ‘무작’이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전통 증류식 소주 중 가장 비싼 가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술은 내린 뒤 2년 정도의 숙성과정을 거친다. 10~20년 정도의 오크통 숙성을 마친 위스키에 익숙한 주당들은 2년 숙성에서 어떻게 세월의 맛을 느낄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그 생각은 술과 함께 사라진다.

53%의 고도주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물론 목넘김 이후 전통 소주가 가진 쌀의 단향과 과일향이 길게 치고 올라온다. 소주가 향을 느끼는 술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닫게 해주는 그런 술인 것이다.
김택상 명인의 ‘삼해소주’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크향과 바닐라향 등을 즐기기 위해 마시고, 중국 빠이주(白酒)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한 장향에 빠지기 위해 마신다고 한다. ‘삼해소주’는 우리 술이 가진 누룩의 장점을 최적화시켜 향으로 이끌어내는 술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김택상 명인이 빚는 삼해소주는 정월 해(돼지)날부터 세 차례(삼양)에 걸쳐 술을 빚어, 저온에서 숙성한 술을 단식증류기로 한 차례 증류한 소주이다. 원주의 특징은 술을 빚을 때마다 누룩을 넣어 바디감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 술이 소주로 변화하면서 술은 달기 그지없다. 바로 거른 술은 화독내가 강해 마시기 불편한데 이 술은 예외다. 한 달만 숙성돼도 고급스러운 풍미가 넘쳐나는 서울의 대표 명주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지난해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증류소주 부문)을 받은 조은술세종의 ‘이도’와 금상을 받은 풍정사계의 ‘겨울(冬)’도 좋은 증류소주의 풍미를 제대로 갖추고 있어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한 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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