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 이상, 부적합투자자 우선 적용…차후 대상 확대
소비자보호 실효성 확보 vs 파생상품 시장 축소 우려

<대한금융신문=김미리내 기자> 내년부터 증권사, 은행 등이 파생결합증권(ELS)을 70세 이상 노인이나 투자부적합자에게 판매할 경우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이 같은 내용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TM(텔레마케팅)이나 전화 주문이 아닌 대면채널에서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장비구축 및 유지비용 부담, 소비자의 낮은 인식, 시간단축을 위한 형식화 우려 등이 제기되고 있어 안착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개정안은 저금리 하에서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은 ELS 등 위험자산투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고령자와 안전성향 투자자들에게 불완전판매가 늘고 있어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실제 개인 투자자 가운데 50대 이상 투자자 비중이 57%에 달하며, 70대 이상 투자자의 경우 노후대비자금 등을 이용해 1인당 투자금액이 1억1000만원으로 전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원이 부족한 고령자가 노후자금 등 거액을 투자한다는 점에서 투자자 보호 장치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

금융위에 따르면 그동안 은행권에서 판매한 ELS 중 절반 이상이 투자자의 위험성향보다 더 높은 위험에 투자토록 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증권사도 10명 중 1명꼴로 이 같은 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내용이 복잡하고 투자위험이 높은 ELS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를 권유한 개연성이 높다는 것으로 투자자의 적합성, 적정성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높아 판매과정 녹취를 통해 사후구제 수단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당국은 그동안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다고 해도 판매자가 인정하지 않는 경우 이에 따른 손해배상을 받기 어려웠던 만큼 녹취를 통해 설명의무 등을 충실히 이행하는 판매환경을 조성하고 부당 권유 및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금융위 박민우 자본시장과장은 “기존의 설명의무를 체크하는 형식은 대면채널에서 불완전판매 입증이 어려워 소비자피해 구제 맹점으로 작용해 왔다”며 “녹취를 통해 금융사 입장에서도 민원을 줄이고 추후 분쟁이나 불완전판매에 대한 입증자료가 될 수 있어 긍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에 없던 녹취 시스템이 구축되는 만큼 향후 적용을 늘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도 소송이나 민원발생 여지가 줄어들고, 분쟁 시 직원보호 기능도 예상돼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에서는 녹취 의무화에 따른 비용발생 부담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금융위는 금융권 전체의 녹취장비 시스템 구축비용을 총 718억원 정도로 예상했으며 금융사별로 연간 2억원 가량이 소요돼 재정적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당기순익대비 비용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지만 업계에서는 초기 투입 비용보다 유지관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업자는 투자권유 관련 자료나 투자자의 금융투자 상품의 매매 및 계약관련 자료를 10년 동안 기록·유지토록 하고 있다. 판매에 대한 전 과정에 대한 녹취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유지 전산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 또한 당국이 초기 정착을 감안해 적용대상을 70세 이상 고령자, 부적격투자자에서 점차 늘려갈 계획인데다, 고령투자자 비중 또한 늘고 있어 향후 투입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비구입을 비롯한 시설설치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지점이 많은 경우 초기 시설비용도 부담이지만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해 10년간 보관해야 한다는 점에서 차후 전산관련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70세 이상 고소득자가 늘어나면서 ELS 등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고, 부적합투자자 및 고령자의 비중은 생각보다 높은 20~30% 정도 수준으로 회사별로 30%를 넘어서는 곳도 있다”며 “고령투자자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업계에 미치는 영향도가 매우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70세 이상 혹은 부적격투자자라고 해도 투자경험이 풍부하거나 재투자 시 녹취 유무를 선택하거나 과정을 생략하는 등의 차등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판매자 뿐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녹취가 개인정보노출 등 부담이 될 수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불편을 야기, 대규모 민원사태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가입절차가 서류에 사인하느라 오래 걸렸다면 앞으로는 녹취 의무를 설명하고, 판매 전 과정을 녹취해야한다는 점에서 기존보다 소요시간이 늘어날 것”이라며 “녹취절차로 인해 고객들이 불편을 느낄 수도 있고, 개인정보노출 위험 등으로 녹취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는데, 녹취를 거부할 경우 상품가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식이 넓어지지 않는 한 오히려 대규모 민원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경험이 풍부한 고령의 투자자의 경우 녹취 없이 청약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시간이 오래 소요된다는 점에서 제도의 형식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제도 시행 후 시간이 지날수록 빠른 청약을 위해 녹취를 위한 설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 경우 녹취 파일은 소비자 보호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판매자를 보호하는 장치로 역이용 될 가능성이 있다. TM채널 등에서 설명의무 녹취가 이처럼 형식화 된 사례는 종종 있어왔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파생상품 가입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데, 가입 시간이 더 길어질 경우 내방했던 고객이 가입을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갈 가능성도 있고, 판매자 입장에서도 녹취부담이나 한정된 시간 내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파생상품을 권유하지 않는 등 전체 파생상품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며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금융사 뿐 아니라 당국차원에서도 녹취에 대한 필요성을 소비자들이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그동안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쳤고, 최소한의 도입과 1년여의 준비기간, 기존 전화녹취 시스템 활용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위는 각 협회를 통해 녹취시스템 설치여부 등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녹취의무 시행일인 내년 1월 1일 이후 금융감독원 검사 시 녹취 시스템 등을 점검토록 해 실제 운영여부를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