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김미리내 기자> 채용비리 문제로 질타를 받고 있는 금융감독원 일부 직원이 피감기관인 금융사 직원 수십명으로부터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빌려 갚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다. 또 이 같은 비위를 저지른 팀장급 간부들의 징계를 경감하고 일부 징계 사실은 공개하지 않는 등 제 식구 감싸기식 모습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열린 금융감독원 국정감사 자리에서 자유한국당 김한표 의원은 최흥식 금감원장에게 “금감원 직원이 피감기관인 금융사 직원에게 사적으로 돈을 빌리는 게 허용되는 일이냐”며 “임직원 행동강령에 금지되어 있는 사항임에도 슈퍼갑 위치인 금감원 직원이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지적했다.

김한표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금융민원실 생명보험 담당 A팀장이 생명보험사 직원 5명과 팀 소속 부하직원 8명으로부터 약 3000만원을 빌린 뒤 일부를 갚지 않은 사실이 금감원 감찰팀에 적발됐다. A팀장은 생보사를 제외한 금융사 직원들과 금감원 내 타부서 직원 78명으로부터 2억1100만원을 빌린 뒤 6200만원을 갚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김 의원은 “이 돈들이 골프티칭프로 자격취득을 위해 1억9000만원을 사용, 부동산 투자손실 보전에 8000만원, 차량 구입에 8000만원, 자녀 교육비로 3000만원 등에 사용됐다”며 “당초 정직 3개월로 징계안이 마련됐지만 인사윤리위원회 과정에서 과반 위원들의 주장에 따라 정직 1개월로 징계가 낮춰졌다”고 말했다.

또 같은 해 10월 손해보험국에 근무하던 B팀장 역시 자녀 유학비를 이유로 손해보험사 등 금융사 직원과 금감원 동료직원들로부터 1억7600만원을 빌린 뒤 8500만원을 갚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으나 A팀장의 징계가 1개월로 경감된 점을 감안해 감봉 6개월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임직원 행동강령은 직무관련자에게 금전을 빌릴 경우 행동강령책임자에게 신고하도록 하고 있음에도 이 같은 절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이자지급이나 차용증도 없이 금전거래가 이루어진 것으로 적발됐다.

김 의원은 “우월한 지위를 가진 금감원 간부들이 금융사 직원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행위는 그냥 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또한 금감원이 이 같은 징계사실을 공표하지 않고 은폐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인 것은 밖에서는 금융기관에 칼을 휘두르고 제 식구는 두둔하는 식으로, 공개가 누락된 징계사실을 조속히 공개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 원장은 “공개되지 않은 직원징계 사항들을 즉각적으로 공개하고 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감은 정무위원회 소속 여야의원을 막론하고 금감원의 채용비리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은 “어느 기관보다 엄정하고 공정해야 하는 금감원에서 어떻게 취업 비리가 있을 수 있느냐”며 “단 한 사람이라도 양심선언, 내부고발을 했다면 이같은 일은 없었을 것인데, 단순히 위원회 몇 개 만들어 될 일이 아니다”고 질타했다.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금감원 채용비리의 근본 원인은 퇴직 간부들의 청탁에 있으며, 이들이 금감원을 상대로 로비하는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수 의원들이 채용비리로 얼룩진 금감원을 질타하며 무엇보다 앞서 내부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흥식 원장은 “면목 없고 송구스럽다”며 “조속한 시일 내 비리 관련 책임자를 엄정조치하고 내부를 쇄신할 것이며 인사·조직 혁신 테스크포스(TF)를 통해 쇄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어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돼 사퇴한 임원들에 대해 별도의 징계없이 사표를 수리한 문제에 대해서는 “임원에 대한 별도의 징계 규정안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TF에서 고려해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이달 중으로 윤곽이 나올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금감원 간부 일부가 우리은행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새롭게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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