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부터 일본식 기준 벗어나야 경쟁력 갖춘 우리 술 가능

수년째 누룩 빚으며 각종 데이터 축적해가며 과학화 이끌어

▲ 전남 장성의 한 폐교를 인수해 양조장을 만들어, 전통주 시장에 뛰어든 김진만 대표의 청산녹수. 사진은 공장 전경.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 술의 생명은 누룩에서 시작된다. 쌀도 중요한 원재료이지만, 누룩에 들어 있는 다양한 효모와 균주가 다채로운 술맛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술도가들은 우리 누룩보다 일본식 입국을 선호한다. 균질한 술맛과 안정적인 생산이 그 이유다. 하지만 입국을 선택하는 순간 막걸리와 청주(주세법 상 약주)의 술맛은 제한된다.

전남대 생명화학공학부 김진만 교수는 미생물 전문가이자, 올해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된 ‘청산녹수’의 대표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우리 전통주가 갖는 다채로운 맛의 원천을 누룩에 있다며 오랜 기간 누룩 연구에 천착해왔다. 그래서일까, 그는 술을 만들어내는 효모와 균주들을 ‘그 분들’이라고 부른다.

“그 분들을 잘 모셔야 좋은 술을 낼 수 있다”는 그는 효모와 균주에 최적화된 누룩방을 운영하고 있다. 누룩을 띄우는 누룩실과 숙성실을 분리해서 각각 온도와 습도를 달리 유지시킨다. 또한 누룩의 종류도 다양하다. 청산녹수의 대표 제품인 무감미료 막걸리인 ‘사미인주’용 누룩 이외에 여러 누룩을 빚고 있다. 우선 이화주를 빚는 데 쓰는 이화곡, 왕의 술상에 올랐다는 향온곡 및 백수환동곡, 내부비전곡 등 문헌에 등장하는 여러 누룩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산녹수의 누룩실과 연구실은 김 교수에게 놀이터처럼 보인다. 다양한 누룩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그동안의 전통주 명인들은 눈짐작과 손맛으로 유지해왔다면, 그는 누룩의 여러 특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데이터를 쌓고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다뤄졌던 전통주 제조방법이 그의 손에서 체계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청산녹수는 벤처기업으로, 햇수로 딱 10년 전에 출발한 기업이다. 당시 김 교수는 우리 막걸리의 주재료인 쌀과 양조장이 하나의 그림으로 들어오는 술도가를 기획한다. “서양의 와이너리들이 모두 포도원 한 가운데 있듯이 우리들의 양조장도 논 한 가운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김 대표는 그래서 “장성에 있는 폐교를 끈질기게 설득해서 인수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한다. 

▲ 전남대학교 교수이기도 한 김진만 대표는 3년전부터 제대로 된 우리술을 빚기 위해 누룩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관람객에게 공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진만 대표.

처음 술을 빚을 때부터 김 교수가 누룩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다른 양조장처럼 입국을 사용해서 술을 빚었는데, 너무 공장제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전국의 누룩 고수를 찾아다니며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누룩은 된장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정성껏 빚은 이화곡을 이용해 된장을 시범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는 이를 이용한 식초까지 준비할 계획이란다.

물론 술도가 본연의 면모도 갖추기 위해, 현재 빚고 있는 ‘사미인주’와 ‘꿀막걸리’, ‘청산녹수생탁주’외에도 석탄주(惜呑酒) 방식으로 네 번의 덧술을 더해 100일 가량 숙성시키는 오양주를 계획하고 있다. 

이와 함께 스팀방식 상압증류로 받아낸 소주를 3년 정도 숙성시켜 시장에 낸다는 계획과 8가지 약재를 넣어 중탕해서 빚은 술덧을 증류하는, 장성 고유의 전통주인 진고색주도 복원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주류제조면허도 현재의 막걸리에서 청주, 소주, 일반증류주까지 모두 취득한 상태라고 한다.

김 교수는 청산녹수에서 펼치고 있는 자신의 작업을 한마디로 ‘전통주 독립선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술을 일본 술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온 관행에서 벗어나려면 술을 빚는 사람이 재료와 제조방법부터 우리 주방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 술의 이름부터 일제가 만든 기준을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구한말까지 연중행사로 치러지던 ‘향음주례’가 의병 모집 및 항일운동으로 연결될 것을 우려한 일제에 의해 문화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사라지게 된 점 등 왜곡된 우리 문화를 제자리로 돌려야 우리 술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술이 기대되는 또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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