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위험’ 보장하고자 사망 대신 건강보장 확대
건강관리서비스 확대 예고…보험료 정합성 제고
저금리·저성장에 연금도 ‘변액보험’ 매력 높아져

우리나라 보험업계는 저성장 위기에 처했다. 생명·손해보험업계를 불문 보험료 성장률 전망은 지속적인 하락을 예견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오래 사는 사회’에 돌입하면서 예견된 일이다.

고령화 사회는 실질 노동인구를 줄여 가계소득을 감소시킨다. 부양해야 할 노후 세대는 늘어나는데 실질 구매층인 젊은 세대에게 보험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 어려워지는 시기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보험업계는 다가오는 위기를 기회로 삼고 고령화 사회를 헤쳐 나갈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오래 사는 위험에 대비하려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붙잡기 위한 노력이다.

▲ 전체 보험산업의 보험료 성장세는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다. <표=보험개발원>

보험소비자, 사망보다 ‘생존’ 중요시

종신보험은 가장의 이른 사망으로 남겨진 유족들의 경제적 위험을 보장하기 위해 가입하는 상품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고수익 상품이다. 보험료가 비싸다보니 고액의 보험료 수입을 얻을 수 있는데다 다른 상품보다 보험료에서 떼어가는 사업비 수준도 높다.

고령화 사회가 될수록 더욱 효자 상품이다. 보험사의 3대 이익원 중 하나인 사망률차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사망률차익이란 보험사가 예상한 시점보다 더 늦게 보험계약자들이 사망에 이르면서 발생하는 차익을 말한다.

이는 종신보험 등 사망계약 중심으로 보험 판매를 해왔던 외국계 생명보험사의 위험손해율 추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푸르덴셜생명과 메트라이프생명 등이다. 두 회사의 올해 상반기 기준 위험손해율은 각각 52.5%, 67.1%를 기록하는 등 국내 생보업계 빅3인 삼성생명(81.44%), 한화생명(82.25%), 교보생명(81.70%)를 최대 30%포인트까지 밑돈다.

위험손해율이 50%대에 머문다는 것은 순수하게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해 걷는 보험료(위험보험료)를 100원 걷을 때 보험금(사망보험금)은 50원밖에 지급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거둔 보험료의 절반이 보험사의 이익이 되고 있다는 것.

이렇다보니 종신보험은 소비자의 니즈에 맞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유행했던 종신보험은 연금 및 생활비 선지급 콘셉트를 도입한 상품이었다. 즉 노후소득 보전용 종신보험이다. 소득이 발생하는 시기까지는 사망위험을 보장하고 이후 시점부터는 사망보험금을 매월 혹은 매해 부분 해지해 일정 금액씩을 받아간다.

올해부터는 연금에 의료비 보장까지 확대한 종신보험이 대세다. 노후생활에서 가장 큰 지출은 결국 의료비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치명적 질병(CI·Critical Illness) 보험보다 발생확률이 더 높은 질병에 대해 보장하는 GI(General Illness)보험이다. 기존 CI보험이 사망 직전단계의 질병에 대해서만 보험금을 선지급 해줬다면 GI보험은 질병의 치료비 지급에 초점을 두고 있다.

비싼 종신보험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출시되는 상품도 눈에 띈다. 암, 뇌출혈, 급성심근경색 등 3대 주요 질병을 집중 보장하는 상품이나 치아·입원비·간병·상해보험 등이 크게 늘어난 이유다.

상품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대 100세 만기의 사망 계약을 주계약으로 두고 주요 3대 질병을 주계약 만기까지 보장하는 상품들도 메트라이프·신한·KDB생명 등에서 엿볼 수 있다. 평생 동안 사망을 보장하는 것이 아닌 만큼 보험료는 종신보험보다 저렴하다.

사망보다 생존위험에 대한 관심의 증가 추이는 교보생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교보생명 가입자들은 종신보험을 건강보험으로 전환시켜주는 계약전환 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 ‘교보내생애맞춤건강보험’을 이용해 종신보험을 ‘사망+건강보험’ 혹은 ‘건강보험’으로 전환한 가입자는 3만명에 이른다. 상품 출시 반년 만의 일이다. 부담스러운 보험료를 줄이거나 필요한 건강보험을 챙길 수 있는 점이 소비자의 니즈와 맞아떨어진 사례다.

▲ 보험업계는 각종 웨어러블 기기 등 각종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일정 기준 이상의 신체 활동을 할 경우 보험료를 할인해주거나 일시금을 지급하는 건강관리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사진=금융위원회>

‘사후약방문→사전 예방’ 패러다임 온다

이전까지 보험은 사후약방문 성격이 강했다.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손실을 보장해주는 측면이다. 앞으로는 사망과 질병의 사전 예방을 요구하는 능동적 형태의 건강관리서비스가 대세가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지난 2일 헬스케어서비스(고객 건강관리서비스)에 대한 법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서부터다. 이전까지 보험사의 헬스케어서비스는 의료법 상 규제에 막혀 제한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만 제공할 수 있었다.

앞으로 출시될 건강관리서비스의 예를 들면 꾸준한 걷기 운동 등 운동 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식이다. 보험사는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와 연동해 계약자의 건강정보를 수집, 관리하게 된다.

다른 예로는 당뇨질환자의 합병증을 보장하는 상품에서 관련 지수(당화혈색소)를 일정수준 이하로 관리하면 보험료를 할인해주거나 보험료 할인분을 일시금으로 지급하는 방식도 예상해볼 수 있다.

이는 이미 국제적으로도 상용화된 서비스다. 일본 악사, 영국 푸르덴셜, 아시아태평양 지역 중심의 AIA, 중국 평안보험은 건강관리 프로그램에 가입해 건강등급을 부여받은 후 계약자의 노력으로 등급이 개선되면 보험료 할인, 캐시백 등의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보험사의 노력은 고령자 증가로 만성질환자 또한 늘어나는데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지속 출시되는 3가지 질문만 통과하면 가입할 수 있는 간편고지 건강보험도 새로운 가입 수요인 고령자, 유병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향성에서 비롯됐다.

보험사가 헬스케어서비스를 운영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보험료 할인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보험사가 통계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기대 수명’보다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을 바탕으로 수집되는 ‘건강 수명’의 통계적 가치가 커질수록 보험사는 사망 및 질병보험에서 좀 더 정교한 보험료 산출이 가능해진다.

이는 당뇨뿐만 아니라 각종 통제 가능한 만성질환에 대한 보험의 담보 범위를 확대해줄 수 있다. 특히 보장기간이 최소 10년에서 최대 사망 시까지 이어지는 장기 상품인 보험의 특성상 보험사는 앞으로 지급할 보험금에 대한 정확한 보험료 산출이 필수적이다.

즉 건강관리서비스는 질병 발생과 조기 사망을 막아 고령화사회에서 발생하는 오래 사는 위험에 대한 준비를 도울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금 지급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 미래에셋생명의 변액보험 MVP펀드가 출시 3년 6개월만에 순자산 7000억원을 돌파했다. MVP펀드는 고객이 펀드 변경을 할 필요 없이 자산관리 전문가가 분기별로 자산 리밸런싱을 실시하는 일임형 펀드다. <표=미래에셋생명>

그래도 해답은 ‘연금보험’

노후소득의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가입하는 연금보험은 최근 저금리, 저성장 시대를 맞으며 사실상 매력을 잃고 있다. 일반적인 연금보험은 금리가 아무리 떨어져도 최소한의 금리를 보증해주는 최저보증이율이 1% 내외에서 결정된다.

최근 온라인보험을 통해 판매되는 소득공제 목적의 연금저축보험도 3%대 공시이율(변동금리)을 제공하고 있지만 저금리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을 헤지(Hedge)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평이다.

연금보험을 포함한 저축성보험이 10년 이상 유지 시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음에도 연금보험 상품에 대한 니즈가 점차 떨어지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이러한 저축성보험은 앞으로 보험업계에 도입될 새로운 회계제도 하에서 돌려줘야 할 부채로만 남는다.

특히 연금은 사망과 달리 보험계약자가 오래 살수록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돈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책임이 발생한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연금 및 저축보험의 매력이 떨어지자 보험사들이 선택한 탈출구는 변액보험이다. 변액연금보험이나 변액적립보험 등은 펀드에 투자한 실적에 따라 받을 수 있는 보험금(연금액)이 달라질 수 있다.

원금 이상을 보전해주기 위해 최저보증이율이 존재하는 상품이 대부분이지만 변액보험은 보험사보다 보험계약자의 책임이 더 크다는 점에서 보험사의 부담이 덜하고 보험계약자에겐 투자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최근에 출시되는 변액보험은 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비율을 높게 설정할 수 있고 최저연금액을 보증 받을 수 있는데 대한 비용을 내지 않는 대신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미래에셋생명의 ‘투자전문가의 변액연금보험’과 ABL생명의 ‘투자에강한변액연금보험’ 등이 있다. 두 회사는 최저연금액을 보증하지 않는 대신 투자한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한 장치를 마련했다. 투자한 펀드가 일정 이상의 수익이 발생하는 경우 채권 중심의 안정형 펀드로 자동 이전하는 기능 등이다.

변액보험 가입자들이 펀드 변경에 소홀함에 따라 발생하는 수익률 악화에 대처하기 위한 일임형 펀드 시장도 지속 커지고 있다. 일임형 펀드는 보험사가 직접 펀드 변경 등 수익률 관리를 대신해 준다는 점에서 전문가의 수익률 관리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일임형 펀드에는 미래에셋생명 ‘MVP펀드’ 삼성생명 ‘S자산배분형’, 알리안츠생명 ‘팀챌린지자산배분형’, ING생명 ‘자산배분형’ 등이 있다. 특히 MVP펀드의 경우 최근 순자산액이 7000억원을 돌파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하나 뜨고 있는 변액보험 펀드는 ETF(상장지수펀드)다. ETF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이 저렴해 타 펀드와 동일 수익률에서도 더 높은 환급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산투자가 가능해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목적에 둔 연금 목적 가입자에게도 알맞다는 평가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