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 위험에도 자율협약 이유로 ‘유명무실’ 전락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NH농협손해보험 등 일부 보험사들이 암 진단비에 대한 보험업계 누적 가입한도를 무시하는 사례가 속속 발생하고 있다.

다수 보험사에서 동일 담보를 중복 가입해 고액 보험금을 타내려는 보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자 도입됐지만 이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상황이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NH농협손보는 고령자, 유병자 대상 간편고지 암보험 상품인 ‘헤어림시니어암보험’에 가입하는 보험 계약자들의 암 진단비 보험업계 누적 가입한도를 보지 않고 있다.

통상 보험사들은 암 진단비에 대한 가입자의 보험업계누적 합산 한도를 1억~1억5000만원 수준으로 정하고 있다.

기존에 가입했던 보험들의 암진단비 담보 합계가 1억원이라면 보험사에 따라 추가적인 암진단비 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6개월 내 1억원 이상 암진단비에 가입하는 등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진단비 담보 가입이 이뤄질 경우 보험사기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가입을 받아주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헤어림시니어암보험은 가입할 수 있는 암진단비 한도가 일반암 4000만원, 5대 고액암 3000만원, 3대 특정암 2000만원 등 최대 9000만원까지다.

이 상품은 사망 담보 없이도 순수 암진단비만 가입할 수 있도록 해 보험료가 저렴하다. 일반적으로 암진단비는 사망이나 암을 제외한 주요 2대 질병(뇌졸중, 급성심근경색)의 진단비 등을 함께 가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암진단비를 기존보다 높여 받고 싶은 경우 추가 가입 용도로 활용된다. 애초부터 기존 암보험 가입자들이 암진단비 업계누적 한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은 상품인 셈이다.

NH농협손보 관계자는 “사망 계약의 경우 고액 가입이 보험사기로 이어질 확률이 높지만 일부러 암에 걸려 진단비를 타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보험계약자의 도덕적해이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처럼 진단비 누적 가입한도는 지난해 말부터 도입됐지만 일부 보험사를 중심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보험업계도 진단비 합산한도가 자율적인 협약일 뿐 법적 제재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누적한도를 지키지 않는 보험사는 앞으로도 비일비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망, 암, 입원·수술비 등 진단비 담보는 보험 가입 시 약속한 금액을 보상한다. 정액보장형 상품은 보험금 중복 수령이 가능하다보니 여러 보험사에서 동일 진단비 담보에 중복 가입하는 경우 고액 보험금을 타내려는 보험사기의 위험성이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보험사에서 한시적으로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언제든 인수기준을 완화하는 식으로 업계누적 한도를 무시할 수 있다”며 “자율규제다 보니 보험사기 가능성보다는 단기간 매출 확대에 더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8월부터 지난달까지는 ABL생명이 보험업계 암진단비 합산한도를 보지 않고 암진단비 한도를 최대 2억5000만원까지 한시적으로 확대해 판매한 바 있다.

이 상품은 암(유방·전립선·갑상선·기타피부암 및 대장점막내암 제외)으로 진단 받았을 경우 진단금을 최대 1억까지 지급한다. 또 진단 후 1년이 경과한 뒤에 계속 살아있을 경우 매월 3년(1형)동안 최대 400만원 또는 4년(2형)동안 최대 300만원을 생활자금으로 지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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