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리콘벨리은행 무이자예금 받아 벤처기업에 대출
불확실성 높은 대출에도 낮은 리스크와 높은 ROE 유지

시중금리 하락세가 시작된 지난 2010년 이후 국내 시중은행의 ROE(자기자본이익)는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핀테크산업의 성장에 따라 비금융기관의 금융서비스 진출 가속화와 예상치 못했던 카카오뱅크의 폭발적인 성장세 또한 시중은행에 강한 위협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혁신기술 중심의 벤처전문대출로 새로운 은행모델을 개척한 미국 실리콘벨리은행그룹(이하 SVB)의 사례는 디지털금융의 과도기를 걷고 있는 국내 은행들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산은경제연구소 박희원 연구원은 “불확실성이 높은 혁신기업에 자본투자가 아닌 대출 형태로 모험자본을 공급하면서 리스크와 비용은 매우 낮게 유지하는 SVB의 사업모델은 국내은행의 벤처금융에 대한 인식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성장성이 높은 스타트업을 가려내는 SVB의 능력과 노하우를 잘 활용한다면 금융중개기능 강화를 통해 은행산업의 부가가치를 제고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SVB는 지난 198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된 벤처금융 전문은행으로 월가의 대형금융기관과 비교되며 혁신적인 은행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SVB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기업금융, 프라이빗 뱅킹, 벤처캐피탈 크게 3가지로 구분되며 대부분의 수익이 기업금융부문(2016년 기준 84.7%)에서 발생한다. 기업금융은 주로 IT, 생명과학, 헬스케어 등 하이테크기업 및 벤처캐피탈(VC)?프라이빗에쿼티(PE)를 대상으로 예금?대출, 외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SVB가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 속에서도 견고한 대출 성장세 및 양호한 수익을 기록할 수 있었던 기반을 견고한 ‘벤처기업-VC/PE-SVB’의 3각 협업관계로 꼽는다.

SVB의 대표적인 상품인 ‘벤처대출(Venture Debt)’은 VC/PE가 1차적으로 투자한 벤처기업에 대출을 제공하고 이후에 이뤄지는 VC/PE의 추가 자본투자를 상환재원으로 활용한다. 이 같은 방식은 현금창출능력과 담보를 중시하는 일반 은행의 대출시스템과 차별화된다. 

특히 SVB는 자금의 대부분을 무이자예금으로 조달하고 있다. SVB의 주력고객인 벤처기업 및 VC/PE 모두 투자금 모집 과정에서 상당한 유동성이 필요해 언제든 투자가 가능한 현금상태로 보유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달된 자금은 벤처기업 및 VC/PE의 대출자산으로 운용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SVB가 벤처금융에 주력하는 비즈니스 모델에도 불구하고 높은 ROE를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SVB는 국내 자산규모 1위인 신한금융지주 자산의 약 8분의 1을 보유하고 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고는 계속 10%가 넘는 ROE를 기록하며 국내은행 평균과 비교해도 훨씬 우수한 수익성을 보여준다.

물론 미국과 국내 벤처시장의 차이를 고려할 때 SVB의 비즈니스 모델을 국내은행이 그대로 차용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미국에서 VC는 충분한 자금력과 경영지배권을 바탕으로 해당 기업에 어떤 VC가 투자했는지 여부가 은행 대출심사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국내 VC는 아직 그만큼의 규모와 위상을 갖췄다고 보긴 어렵다.

또 미국의 VC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한 이후 후속 투자를 이어가는데 익숙한 반면 국내 VC는 운용하는 펀드의 만기가 상대적으로 짧고 그마저도 경제성이 우월한 후기 라운드 투자에 집중해 후속 투자의 가능성이나 계획을 대출상환재원으로 활용하긴 쉽지 않다.

박희원 연구원은 “SVB의 대표적인 상품인 벤처대출(Venture Debt)은 은행 대출과 스타트업이 공생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상품이지만 한국형 벤처대출 도입하기 위해서는 상품 운용기법 및 노하우뿐 아니라 관련 규제와 벤처생태계 차이 등 제반조건에 대해 보다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벤처대출이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우량 VC들의 누적된 실적 및 평판, 담보로 활용되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유통시장 활성화와 함께 VC/PE와 생산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벤처 친화적인 조직문화도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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