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실명확인 허용됐지만 지점 방문은 여전해
책임회피하려는 금융사…비대면 더 어렵게 만들어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인터넷전문은행 도입을 위해 비대면 계좌개설을 허용했지만 2년이 지난지금도 비대면 금융거래는 활성화되지 못한 채 정체 중이다.

금융당국의 비대면 실명확인 허용으로 기존 은행에서 대면으로 이뤄지던 접근매체 발급, 이체한도 상향, 해외송금을 비롯해 온라인 증권계좌개설 및 투자자문계약, 일임형 ISA가입까지 사실상 모든 금융거래가 비대면으로 가능해졌다. 하지만 정작 금융소비자가 비대면 거래를 이용하기엔 불편한 점들이 산재해 있다.

비대면 계좌개설을 시도한 고객 중 계좌개설까지 모두 완료한 고객의 비율은 약 60~65%에 불과하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여전히 은행 지점 방문은 필수다. 지난 4월과 7월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업무를 개시하며 일부 신용대출상품에 한해 비대면 대출을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성복 연구원은 국내 비대면 금융거래의 현황 및 리스크를 검토한 보고서에서 금융당국의 규제철학과 금융사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금융회사로 인해 우리나라의 비대면 금융거래가 복잡하고 불편해졌다고 분석했다.

우리나라 금융실명법은 최초 금융거래자를 모두 잠재적 위법자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러한 규제철학은비대면 거래를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해도 다른 금융회사에서 처음 계좌를 개설하면 다시 잠재적 위법자가 되며 거래실행 이전에 실명확인을 요구받는다.

이성복 연구원은 “비대면 실명확인이 허용된 이후에도 계좌 개설 시 금융회사 지점을 방문해야 하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며 “금융실명법은 지금까지 상당한 사회적 거래비용을 초래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객의 편의보다 금융회사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행태 또한 비대면 금융거래를 불편하게 만드는 장본인이다.

해외에서는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하거나 금융서비스에 가입할 때 고객의 실명과 본인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실명과 본인확인 부담을 고객이 아닌 금융회사가 진다. 따라서 고객은 온라인이나 모바일 환경에서 쉽게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반면 금융회사가 그 과정에서 본인 확인에 소홀할 경우 엄격한 제재를 받게 된다.

국내 금융회사는 보안사고가 발생해도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에 따라 그 책임을 쉽게 면할 수 있으며, 보안사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보안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은 콘텐츠에 대해서도 설치를 강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0월말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4개 권역 총 91개 금융회사의 웹사이트 를 대상으로 보안프로그램 설치현황을 조사한 결과 단순 조회성 콘텐츠에 대해서도 보안프로그램을 의무 설치하도록 요구할 뿐만 아니라 15곳(은행 6곳, 증권사 1곳, 보험사 8곳)에서는 전체 메뉴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보안프로그램 설치를 강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뱅크는 이 같은 현행 제도의 한계와 문제점을 인지하고 전략적으로 PC환경의 인터넷뱅킹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100% 모바일 서비스만 가능하며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은행 중심이 아닌 이용자 중심으로 앱을 설계해 고객의 편리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연구원은 “불법적인 자금거래가 의심되는 계좌에 대해서는 고객이 실명과 본인여부를 입증하기 전까지 금융회사 직권으로 고객의 금융거래를 정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금융회사가 책임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며 “단 폭발적인 비대면 금융거래의 성장은 잠재적으로 금융시스템 전반의 안정까지 위협할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은 특정 금융산업의 경쟁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임의적으로 비대면 금융거래를 활성화시키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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