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간편결제를 시작으로 모바일뱅킹, P2P대출, 로보어드바이저, 챗봇 등 핀테크 기술과 기존 금융서비스가 결합된 다양한 상품들이 쉴새 없이 출시됐다. 하지만 시장에 나온 수많은 혁신 중 성공작은 많지 않다.

미국 소비재 기업은 매년 3만개의 제품을 출시하지만 그 중 70~90%는 12개월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판매대에서 사라진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출시한 신제품의 실패율도 평균 80%에 달한다

◆ ‘혁신저항’은 익숙함을 원하는 소비자의 본능

많은 혁신이 실패를 맛본다. 혁신이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와 기업의 시각차이에서 비롯된다. 소비자는 기존 제품의 가치를 과대 평가하고, 기업은 혁신을 창조하는 과정에 몰입하며 혁신의 이점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며 간극이 생긴다.

혁신의 수명도 짧아지고 있다. 과거에 등장한 혁신기업들은 워크맨을 개발한 소니나 휴대전화를 발명한 모토로라처럼 적어도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과실을 누리기도 전에 새로운 혁신에 의해 시장이 재편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아이폰의 등장으로 MP3플레이어, 내비게이션, 디지털 카메라 등이 점차 우리 곁에서 멀어지고 있다. 기발한 혁신은 산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LG경제연구원은 기업의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와 대응방안을 분석한 '혁신, 낯섦의 저항 극복할 수 있어야'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기업이 혁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혁신이 수용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소비자가 보이는 ‘혁신저항’은 혁신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아닌 혁신이 야기하는 ‘변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혁신저항이 발생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방식과 습관이 양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행동방식에 변화가 있으면 소비자는 혁신 수용을 보류하거나 거부하기 마련이며 행동변화가 많을수록 소비자가 수용하기까지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요구된다.

LG경제연구원 황혜정연구원은 “소비자는 심리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내재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혁신에 수반되는 변화는 소비자에게 긴장을 유발한다”며 “소비자는 어떠한 변화도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잠재성이 있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저항을 선택한다”고 분석했다.

많은 기업에서 간과하고 있는 소비자의 ‘심리적 편향’은 혁신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특별한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한 현재 상태에 그대로 머물고자 하는 강한 바람을 갖고 있다. 만약 소비자가 무언가를 유지하고자 할 때는 그것이 단순히 ‘현재상태’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으며 혁신을 대할 때도 이런 성향은 강하게 나타난다.

황 연구원은 “무엇인가 손실을 보았을 때 소비자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은 이득을 봤을 때 영향력에 비해 훨씬 크다”며 “기업은 자사의 혁신제품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혁신제품의 이득이 손실보다 크지 않을 경우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혁신의 실패이유….소비자 관점에서 접근해야

혁신기술 기업들은 이 같은 혁신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행동변화를 최대한 줄이고 테스트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소비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아마존은 인공지능 음성인식 비서 ‘알렉사’를 독점하는 것보다 사용처를 넓힘으로써 확산 가능성을 높였다.

아마존은 자사의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에만 제공되던 알렉사를 어떤 제품에도 탑재할 수 있도록 AI 소프트웨어 개발자도구(SDK)인 알렉사 스킬 키트 서비스로 시장에 내놓았다. 이제 가정용 전자제품부터 자동차까지 대부분의 제품에서 알렉사를 찾아볼 수 있다.

차량이나 제품 등 기존 시스템에 혁신기술을 통합시켜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는 혁신의 효용을 명백히 체감할 수 있게 되며 사용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져 혁신 저항을 줄일 수 있다.

혁신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법도 혁신저항을 줄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혁신 제품에 노출되는 기회를 늘리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소비자가 예상한 잠재적 리스크를 줄이고 혁신의 이점도 체감할 수 있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렌탈 비즈니스’가 대표적인 예로 소비자의 초기 부담을 줄여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일정기간 고객이 제품을 보유함으로써 소유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과거 기업성공의 핵심이 ‘운영 효율성’이었다면 변화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창의와 혁신’이 그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기업에서는 영향력이 큰 혁신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잘 만들어진 혁신이 시장에서 빛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혁신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황 연구원은 “고객에게 적은 혜택을 주면서 커다란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면 실패한다. 하지만 혁신의 혜택이 크고 변화 요구가 적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며 “많은 기업이 혁신 실패의 원인을 기술적인 열등함이나 경쟁 열위, 시장환경 등에서 찾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면 혁신을 수용하는 소비자 관점에서 실패의 원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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