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에 대한 혁명이자 반기로 나온 암호화폐, 기존 화폐의 고정관념을 흔드는 혁명은 과연 성공하게 될까.

지난 2001년 처음 등장한 위키피디아는 암호화폐와 같이 임의조작이나 통제받지 않는 집단지성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조작과 편향 시비로 신뢰 시스템이 흔들리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은 인터넷에서 모든 백과사전을 무력화시키는 지식창고로 자리잡았다.

◆달러의 신뢰도 하락…비트코인에 쏠린 기대감

암호화폐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와 알고리즘을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다. ‘집단 네크워크’가 ‘암묵적인 합의하’에 용역과 서비스의 ‘거래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암호화폐는 미래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디지털 휴지조각으로 남거나 글로벌 결제통화로 자리잡을 수 있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연강흠 교수는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이 독점하고 있는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자 반기”라며 “암호화폐는 기축통화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각국 정부와 세계경제가 응답할 차례이며 응답해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거래수단으로 사용되던 초기의 물물거래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귀금속으로 바뀌었으며 상당수의 국가가 금이나 은을 화폐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계대전 이후 통화용 금의 대부분을 보유한 미국연방은행은 금의 지불을 약속하고 달러를 발행했고 달러는 금을 대신해 세계 기축통화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거치며 금과 달러의 온전한 교환이 불가능해졌고 닉슨 대통령은 결국1971년 달러화의 금태환을 정지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미국이 금 교환의 부담 없이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게 되자 기축통화인 달러화는 구조적인 모순을 갖게 됐다.

여기에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각국은 양적완화 등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회복을 도모하게 됐고 종이돈이 시장에 과도하게 공급되며 달러화에 대한 신뢰는 더욱 하락했다. 더구나 세계 각국은 지금 경상수지 개선 차원에서 시장환율에 개입하려는 유혹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 교수는 비트코인의 탄생 배경에 대해 “법화(法貨)는 통화정책 등 국가 통제를 받아 임의로 공급량이 정해지고 가치가 불안정한 화폐다. 유로화나 엔화, 위안화 모두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어 달러화를 대체할 수 없다”며 “사람들은 금과 같이 매장량이 한정돼 가치를 신뢰할 수 있는 기축통화의 대안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암호화폐의 효시인 비트코인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블록체인’ 집단 네트워크가 만든 암묵적 합의

지난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개발자는 비트코인을 온라인 가상화폐의 형태로 처음 공개하며 그의 논문(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에서 ‘중앙은행이 화폐가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배신당했다’고 선언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2100만개만 발행하도록 발행량을 한정해 금과 같은 희소성을 가지도록 만들었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했다.

개인과 개인은 블록체인이라는 디지털 장부를 통해 직접 화폐를 거래함으로써 비트코인의 존재와 소유가 인정된다. 거래가 이뤄지면 새로운 거래 정보가 담긴 블록이 생성되고 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된 모든 참여자의 정보는 체인으로 연결돼 분산 저장된다. 한마디로 집단 네트워크가 신뢰성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누군가 암호화폐를 만들어 묻어두면 채굴사이트에 들어가거나 프로그램을 깔고 네트워크에 참여해 복잡한 암호를 풀고 화폐를 얻게 된다. 암호를 푸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엄청난 시간과 전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채굴장을 구축해 임대하고 채굴기를 판매하는 가상화폐 전문기업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 거래되는 블록체인은 10분당 블록 1MB만을 생성하고 거래할 수 있어 점점 급증하는 거래량을 처리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갈증을 느낀 채굴자들은 지난해 기존블록체인과 호환되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블록체인을 만들어 기존 버전보다 거래처리 용량을 늘린 암호화폐를 새롭게 분리시켰다. 비트코인의 생성 설계도인 코드를 참조하면 새로운 코인을 만드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현재의 가치로 미래를 판단하지 말라

암호화폐가 제도권에 안착할 것인가는 지금 이 시장의 가장 큰 관심사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개시했다. 일본 정부와 기업은 암호화폐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4월 자금결제법 개정을 통해 비트코인을 정식지급결제수단과 기업 보유자산으로 인정했다.

반면 중국은 정부의 위안화 규제에 반발해 비트코인 수요가 급증하고 기업형 채굴업자가 등장하자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고 위안화 거래를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에 나섰다. 호주는 암호화폐를 활용한 돈 세탁 등의 규제에 착수했으며 아이슬란드, 에콰도르, 도미니카공화국은 아예 암호화폐 거래를 불법화했다.

우리나라는 암호화폐가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식적 입장을 회피해 왔으며 지난해 12월 거래를 부분적으로 제한하는 ‘가상통화 긴급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지금은 암호화폐에 대한 과한 투기 열풍으로 부정적 견해도 많지만 기술적인 면에서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결제되는 속도가 느려 신용카드보다 대중화되기 어렵다는 문제는 QR코드 인식만으로 실시간 거래가 가능한 비트코인 결제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며 해결됐다.

암호화폐가 거래의 편의성으로 투기를 유발한다고 말하지만 달러 등의 법화도 외환딜러 간 거래가 어렵지 않고 개인도 통화선물 등을 이용해 손쉽게 거래할 수 있다. 화폐의 필수요소인 가치 안정성을 이유로 가격의 급등락을 튤립버블에 비유하지만 법화 또한 천문학적 숫자로 급락해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화폐는 1달러 당 4.2조 마르크에 거래되기도 했다.

연 교수는 지금의 암호화폐 대한 열띤 논쟁에 대해 현재의 가치로 미래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암호화폐의 미래를 태동기인 현재의 거래량과 가격 급등락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며 “달러화의 불태환 선언 이후 가장 신뢰할만한 자산인 금의 가격도 10년 간 폭등했다. 암호화폐의 미래는 앞으로 가치가 안정되고 광범위하게 거래될 가능성 여부로 판단해야 한다”고 현재 논쟁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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