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 막히고 체험시설 사업 실패로 2~3년 술맛 공백 발생

인사동에 전라도 한정식당 오픈, ‘자희자양’ 재기 발판 마련 나서

▲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을 처음으로 개척한 함평 자희자양의 노영희 대표. 그가 선택하는 것은 모두 업계의 표준이 됐다. 사진은 술빚기 시연 장면.<제공 : 자희자양 홈페이지>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살고자 하면 살아지는 것이 인생임은 분명한 것 같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생각할 때 새로운 돌파구는 주어지기 마련이다. 그것을 기회로 보는 눈을 가졌느냐가 관건일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아스파탐으로 단맛을 내는 알코올 도수 6도짜리 막걸리만 존재했던 시절,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와 약주를 빚어 프리미엄 막걸리를 처음 생산했던 함평의 ‘자희자양’ 노영희 대표가 그렇다. 상업성을 이유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장에 고가의 막걸리를 처음 출시할 때만해도 노 대표의 술 ‘자희향’은 함평의 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입소문은 달큼한 술맛이 입안에 감기는 것만큼 빨리 퍼져나갔다.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도 곡물의 자연스러운 단맛을 이끌어낸 막걸리는 ‘건강함’의 표상처럼 느껴졌고, 전통 방식으로 빚어 3개월을 발효 숙성시켰다는 제조법은 잃어버린 우리 술문화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서울 등의 주점에서 주문이 늘어났고, 술맛을 알아본 주당들의 전화주문도 잇따랐다. 인공감미료에 지친 주당들에게 ‘자희향’은 강렬한 ‘첫경험’과도 같았다.

하지만 두어 해전부터 ‘자희향’ 술맛이 변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유통과정에서 술맛이 변했겠거니 하는 주당들의 우려 섞인 변명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제대로 된 막걸리를 빚으려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반드시 방문해 노 대표의 술빚기 설명을 들어야 했던 함평의 양조장을 찾는 이의 발걸음부터 줄기 시작했다. ‘누룩이 잘못돼 그렇다’는 말부터 술맛이 바뀐 배경의 설명도 줄을 이었다.

프리미엄 막걸리를 처음 개척해 시장을 조성했던 노 대표로서는 인내하기 힘든 시기였다고 한다. 인터뷰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영업에 들어간 인사동의 한정식당 ‘풍류 자희향’에서 만난 노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에 입점된 뒤 입소문을 들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으면서 일본 수출길이 열렸는데, 2014년 일본 후쿠시마 지진으로 수출길이 막혔다. 수입하던 회사가 도쿄전력의 자회사였는데 본사가 어려워지면서 사업 자체를 중단했던 것이다. 매출의 30% 정도가 사라지게 됐다.”

▲ 지난해 11월 노영희 대표는 재기를 위해 서울 인사동에 ‘풍류자희향’을 열었다. 정갈한 전라도 한정식을 내는 이 집의 맛은 아름아름 찾아오는 이들의 입소문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사진은 인사동의 ‘풍류자희향’ 정면 모습.

그런데 여기까지는 노 대표도 이겨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군 예산을 받아 막걸리 체험시설을 짓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자부담 40%의 돈을 마련하면서부터 스텝이 엉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막걸리 공부 3년, 상업양조를 위한 준비기간 3년, 총 6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부터 시작했던 술도가 ‘자희자양’의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다고 한다.

‘찾아가는 양조장’ 선정을 돌파구로 생각했는데 그것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체험장 시설을 위한 자부담 40%의 돈을 마련하면서 갖게 된 은행대출은 시시각각 노영희 대표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술 빚을 쌀마저 살 돈이 떨어져, 항아리에 담긴 재고로 겨우 버티던 시절이 2016년 전후의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지난해 겨우 30가마 안팎의 술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노 대표의 설명이다.

“16개의 술항아리가 가진 것의 전부였던 지난해 연말,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노 대표에게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터주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인사동의 ‘풍류 자희향’이라는 전라도 한정식당을 낼 수 있게 해준 지인의 전화였다. 술은 음식과 같이 제공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남대 외식사관학교에서 3년간 공부를 해 둔 터라, 자신의 음식 솜씨라면 승부를 걸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돈복은 없어도 사람복은 있는 것 같다”는 노 대표는 “지인들이 알고 찾아와주면서 다음달까지 예약이 채워지고 있다”고 근황을 말한다. 큰 아들에게 맡긴 함평의 양조장을 일으켜 세울 발판이 이렇게 마련되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개발한 알코올 도수 6도의 단호박막걸리에 대한 평가가 좋아 그녀의 새로운 도전을 위한 응원군까지 얻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삶은 의외의 순간과 공간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달보드레한 곡물의 단맛과 과일향이 듬뿍 담긴 자희향 술 한 잔이 그립다면 인사동 ‘풍류 자희향’에서 전라도 한정식을 즐기는 것도 방법일 것 같다. 새로 빚은 술이 익기 전까지 외부 유통할 술이 없다고 하니 더욱 자희향 술 한 잔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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