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본질은 있는 시스템 안 지켜 발생했거나 공정성 상실 탓

젊은 고객은 물론 국민들이 납득할 제도 마련에 총력 기울여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관행을 깨고 파격적인 행보를 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조직이 클수록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리더의 성향과 생각에 맞춰 집단적 사고를 하는 것이 보신의 제1원칙으로 받아들여지는 조직에선 더욱 그러하다.

보수(保守)는 무조건적으로 현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고쳐 쓰면서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선 언젠가부터 현재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만을 보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의 가치를 지키는 것만이 자신에게 돌아올 행복(돈을 포함해서)의 총합을 가장 크게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돈을 다루는 은행과 금융권은 안정적으로 고객의 자산을 지켜야 하므로 태생적으로 보수다. 검증되지 않은 것에 한 눈 팔거나, 정해진 절차를 잠시라도 무시하면 생각지 않은 결과를 겪곤 한다. 그리고 때론 참혹한 결과와 대면하기도 했다. 역사 속에서 당대의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렸던 각종 열풍과 대형 사건들이 그 예이다. 그래서 다른 영역보다 더디 가기 십상이고 오해도 많이 받는다.

일부 언론에서 채용비리와 관련, 사정당국이 특정 은행과 특정 CEO를 정조준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감독기관에서 조사했던 자료를 근거로 불법적인 채용비리의 구체적인 내용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CEO 해임이 일으킬 후폭풍을 염려한 탓일까? CEO의 해임여부가 주요한 관심사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감독기관의 중징계가 재판과정에서 결국 무혐의로 밝혀진 바가 더 많다며, 정권교체기를 이용한 감독기관의 무리한 해임권고였다고 우회적으로 현재의 채용비리 사건을 비판하는 기사도 등장했다. 더 나아가 이번 채용비리와 관련, 해당 회사의 CEO가 옷을 벗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예측인지 바람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 기사들이다. 예측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사건에 대한 수사도 다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리는 예측은 개인의 바람일 수밖에 없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게다가 금융권 전반으로 조사가 확대돼 채용비리가 업계 전역에 만연돼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이를 눈감고 넘어갈 확률은 지극히 낮다. 이미 5개 은행의 문제를 두고도 사정당국의 태도는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주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의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계속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감독원에서 조사됐던 구체적인 내용들이 실체로 확인되면 분위기는 뚜렷해질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채용비리 사건의 본질은 해당 CEO의 비리보다 부실하고 투명하지 않은, 그래서 공정하지 않았던 인사시스템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해당 CEO의 해임으로 이 사건을 미봉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채용시스템과 공정한 절차를 통해 인재를 수용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노력이 이 사건을 계기로 마련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가장 먼저 CEO의 해임을 경험한 우리은행부터, 취업을 간절히 희망하는 젊은이들을 포함한 국민들이 납득할 시스템 마련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재의 분위기에서 개별은행이나 회사가 채용비리와 관련, 자신들의 잘못을 선제적으로 털어내면서 CEO을 포함한 임직원의 사과 퍼포먼스를 벌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CEO의 해임을 전제로 하는 사과가 아닌 경우, 효과는 극미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악마의 변호인’을 자처하며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용기를 낼 사람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은행연합회에서 대안을 만들자고 나선 것처럼 합리적으로 잘못된 것을 고쳐가며 고객의 자산을 지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이번 사건으로 인해 발생할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쉽지 않지만 곤경에 처해있을 때 조직은 냉정해야 하며 합리적인 판단을 도출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볼 때, CEO를 보호하는 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역사에서 자주 발견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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