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은 통상적인 벽, 문, 파티션이 없는 세계 최대의 오픈 공간에서 2800여명의 직원이 대면 접촉을 통해 협업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있다.

전세계 시장이 경쟁적으로 디지털화(Digital Transformation)를 추진하고 있는 지금,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선 공룡 IT기업들은 오히려 기업의 미래를 위해 아날로그적 접근 방식을 도입하고 있는 움직임이다.

디지털화가 만든 기업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폐쇄적 마인드’다. 폐쇄적 마인드는 직원간의 협력을 저해하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한하며 조직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연구결과 과로, 스트레스, 모럴 해저드, 정보보안 이슈 이외에 업무 효율이 증가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으로 동료와 대면 접촉을 통한 창의적인 아이디어 부재가 꼽혔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한국 기업도 디지털화 트렌드 속에서 디지털 기반 기술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닌 구성원 간의 정서적 유대감과 창의성 발현을 위한 아날로그 접근방식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선도기업…아날로그 기업문화로 선회

최근 글로벌 디지털 선도기업들은 디지털화에 매진했던 지난 행보와 달리 아날로그 접목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IBM은 1993년 시작한 재택근무제를 24년 만에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표면적 이유는 최근 20분기 연속 실적부진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통금시간 절약, 사무실 임대비용 절감 등과 같은 명분에 비해 업무효율 증대 효과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어도비(Adobe)를 대표하는 ‘어도비 킥박스(Adobe Kickbox)’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꺼내 쓰세요’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 상자다.

이 상자는 어도비 개발자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면 거기에만 집중해 시야가 좁아지는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제작됐다. 상자 안에는 펜, 연필, 종이 노트, 포스트잇,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한 단계별 지침이 적힌 지시 카드, 초콜릿 등이 들어 있다. 모두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에 집중해 활성화할 수 있도록 디지털이 아닌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는 물건들로 구성돼 있다.

어도비 경영진들도 구성원들이 디지털에 매몰되지 않도록 아날로그적 운영방식을 권장하고 있다.

회의에서 파워포인트 발표를 지양하고 회신에 회신을 거듭하는 이메일 사슬에 제한을 두며 사무실 자리도 개방형으로 배치했다. 관련 팀들은 며칠간 메시지와 문서를 주고받은 후 화상 회의를 열기보다는 같은 공간에 앉아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2010년 말 소수의 직원이 구성한 ‘아날로그 연구소(Analog Research Laboratory)'를 공식 조직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이곳은 테크놀로지 회사인가?’, ‘빠르게 움직이고 틀을 파괴하라’ 등의 슬로건을 제작해 회사 칸막이 벽이나 통로에 부착해왔는데, 슬로건 활동이 큰 인기를 끌며 자체 공간과 예산, 상근직원을 거느린 정식 부서로 승격했다.

구글에서 사용자 경험(UX2) 디자이너들에게 스케치를 가르치는 내부교육 과정은 이제 전세계 UX디자이너와 사용자 인터페이스(UI3) 디자이너에게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구글은 디자이너들이 소프트웨어로 작업한 결과물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쓸데없는 디테일에 사로잡힌다고 판단하고,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통해 아이디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교육은 7시간 과정으로 수강생들에게 스케치북 1권과 굵기가 다른 펜 3자루를 지급해 가장 기초적인 스케치인 직선 그리기부터 구글 제품의 모든 기능적 측면을 스케치할 수 있을 때까지 교육이 계속된다.

◆생산적 비즈니스는 구성원과의 ‘마찰’에서 이뤄져

사무실 공간도 기존의 개인공간에서 소통을 강조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완공된 페이스북의 신사옥은 통상적인 벽, 문, 파티션이 없는 세계 최대의 오픈 공간으로 이뤄졌다. 2800여명의 직원이 약 1.6km 길이의 단일공간에 모여 같은 공간에서 대면 접촉하고 협업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있다.

구글은 개방성과 유연성을 설계 철학으로 하는 ‘구글 플렉스(Google Plex)’ 신사옥을 건설 중이다. 구성원들이 걸어서 2분 30초 이내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구상했으며 사무실도 레고 블록처럼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쉽게 구조를 변경할 수 있게 설계했다.

지난해 4월 완공된 애플의 신사옥 또한 임직원의 협업과 수시 미팅을 지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목적으로 설계됐다. 직원들이 원형 복도를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다른 부서 직원과 만나 소통할 수 있고 벽은 곡면 유리로 디자인돼 건물 내부에 있는 다른 부서직원들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디지털화 트렌드 속에서 협업과 창의성 발현을 위해서는 디지털 방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과의 결합이 중요하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조성일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선도기업들이 협업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위해 아날로그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단지 아날로그가 멋있어서가 아니다. 이같은 변화는 아날로그 방식이 경쟁우위를 창출하기 때문이며 아날로그가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비즈니스 방식이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분석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 회사의 기업 문화에 가져다 준 궁극적 이익은 ‘마찰’이다.

조 연구원은 "마찰은 갈등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수평적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디지로그(Digilog) 시대의 리더는 수평적인 파트너십 관점의 리더십을 가지고 개인 차원의 자율성과 집단 차원의 협력을 동시에 추구하며 마찰과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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