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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 사외이사 개혁 없이 지배구조 개선 난망금융권, 대간의 탄핵 자유로웠던 조선만큼 ‘메기효과’ 기대할 수 없어
김승호 편집위원  |  skylink99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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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1  17: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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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 다른 ‘악마의 대변인’ 뽑아 조직에 활력 불어넣는 방안 강구해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왕정국가 조선에는 ‘대간’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었다. 20~30대의 유력한 가문 출신으로 강직하고 식견이 뛰어나고 신망을 받는 관료들을 뽑아서 운영했다고 한다. 이들의 역할은 간쟁과 탄핵 등으로 잘못된 정책 집행에 대해 올곧은 소리를 내는 일이다. 대간들의 역할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세계문화유산인 이 기록에 ‘아니되옵니다(不可)’라는 단어가 6만5000번 이상 등장한다고 한다. 임금이 하는 일이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하거나 민생을 살피지 않고 사치를 하는 경우 거침없이 ‘불가’를 이야기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대륙과 국가에서는 좀처럼 찾을 수 없었던 ‘대간’ 제도는 조선 500년 역사에서 왕권과 신권간의 절묘한 균형추 역할을 했으며, 자칫 제왕적 권력에 의해 ‘집단적 사고’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깨뜨리는 ‘악마의 대변인’이 돼 주었다. 말 한마디로 조직 전체를 긴장시키면서 활력을 불어넣는 일종의 ‘메기효과’를 대간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그런데 첨단 과학문명을 누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 금융권은 역설적이게도 봉건 사회였던 조선 시대 만큼의 ‘메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거수기 사회
회의에서 손을 들어 가부를 결정할 때, 주관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손을 드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중에 거수기라는 말이 있다. 20세기 중반 한국 현대사에서 ‘거수기’는 부패한 정치를 비판하는 좋은 가십거리였으며, 20세기 말 IMF 위기를 거치면서 사외이사 제도를 적극 도입한 재계에선 주총시즌만 되면 도마 위에 올랐던 문제가 거수기였다. 

올해도 예외 없이 금융권의 거수기 ‘사외이사’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대두되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해마다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통해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의 사외이사들의 보수 및 활동 내용을 공시하기 때문이다. 

우선 지적되는 문제는 거액의 연봉과 만장일치로 끝나는 이사회 회의 결과다. 지난해 국내 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의 사외이사들은 200~300시간 정도의 활동을 하면서 평균 6000만원 이상의 보수를 받았으며, 반대 의견은 단 한 차례 나왔다고 한다. 각행 및 금융지주의 사외이사들은 주로 금융권 출신 인사이거나 법과 숫자에 밝은 변호사와 회계사 등이 주를 이룬다. 나름 금융업과 법률에 밝은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외이사들이 내놓는 답은 ‘거수기’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만큼 초라하다.

오죽하면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수차에 걸쳐 거수기에 그치고 있는 사외이사 제도 개혁에 대해 언급하고 있겠는가. “만약 금융인들 중에 금융은 특별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은 언제나 옳고 어떠한 경우도 간섭 받아서는 안 된다는 식의 잘못된 우월의식에 젖어있는 분이 있다면 빨리 생각을 고치기 바란다”(2018년 1월 14일)는 당부까지 했을 정도다. 

최 위원장은 이 말을 통해 현재 금융권이 철옹성 같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무류성의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투명성 제고와 투자가 보호라는 목적으로 IMF 금융 위기 이후 금융권이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를 통한 의사결정 구조가 금융권이 말하듯 항상 최선의 답을 도출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왜 거수기가 되는가
거수기를 두고자 하는 욕망은 제왕적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리더들의 공통점이다. 의회든 내각이든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비판보다 무조건적인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아서 슐레징어 주니어가 자신의 책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 초법적으로 정책들을 결정하고자 하는 ‘제왕적 대통령’이다. 이 경우 주변의 스탭들은 리더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조언자가 아니라 고무도장(rubber stamp, 우리식 거수기)에 그치게 된다. 우리는 권력이 1인에게 집중됐던 수많은 역사적 사례에서 ‘절대권력’의 비극적 최후를 자주 목격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시각과 시간으로 정치를 바라보면서 손쉬운 의사결정을 선호해온 것이다. 

이는 비단 정치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재계의 사외이사는 한시성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거수기 역할을 택하게 된다. 자신에게 권한이 주어진 기간 동안 나눠야 할 경제적 이익이 더 크게 보이는 탓이다. 따라서 자신의 입맛대로 정책을 결정하고 싶은 기업의 리더와 사외이사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지난해 사외이사를 둔 주요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의 이사회에서 단 한 번의 반대 의사가 나온 것이다. 숫자만 보면 왕정국가 조선보다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한 시대, 금융업의 존망에 대한 예측마저 힘들어진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답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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