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 전설 깃든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잃고 위기 겪었으나 보존회 만들어 재기에 성공 

▲ 2001년 기능보유자 박승규씨의 사망으로 위기를 겪었으나 2007년 보존회를 만들어 재기에 성공한 면천두견주. 사진은 주축이 되어 보존회를 만든 김현길 회장이 면천두견주를 설명하는 모습.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진달래의 계절이다. 매화가 남도 땅에서 봄소식을 전하면 이내 개나리와 진달래가 세상을 덮는다. 진달래가 온산을 덮으면 동네 아낙들은 진달래 따기에 여념이 없다. 설 지나 정월 첫해(亥)일에 담아둔 밑술에 진달래를 부재료 사용해 두견주 덧술을 빚기 위해서다. 그 절기가 대략 삼월삼짇날. 흐드러지게 핀 꽃을 따다 찹쌀가루로 반죽해 진달래 꽃 고명으로 얹어 전으로 부쳐 먹고, 두견주 덧술 빚어두면 대충 농번기 준비가 마무리된다. 

먹을 식량이 부족해 양곡관리법을 강화해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했던 시절, 국가가 나서 전통주를 급하게 살린 시기가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문화를 소개할 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문화재청이 3개의 술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 돌배향이 나는 문배주, 경주교동법주, 그리고 야트막한 산들에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던 당진 면천의 두견주가 그 주인공이다. 이후 각 지역의 명주들이 하나둘씩 복원되면서 지자체에서 문화재를 지정하게 돼, 더 이상 국가 지정 문화재가 늘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두견주에 쓰는 진달래꽃을 왜 두견화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유는 두견새(뻐꾸기)가 울다가 토한 피가 진달래에 떨어졌다는 전설 때문이다. 게다가 면천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 장군에 얽힌 전설까지 함께 깃들어 있는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술이기도 하다.

복지겸 장군이 병이 들었는데 온갖 좋다는 약을 다 사용해도 병이 낫지 않자 그의 어린 딸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리는데, 신선이 나타나 아미산에 활짝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되 면천에 있는 안샘 물로 술을 빚어 100일 후에 마시고, 뜰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정성을 드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딸은 신선의 말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시행한다. 그리고 복지겸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고 하는데, 비록 전설이지만 이 스토리가 전해지면서 두견주는 ‘백약지장(百藥之長)’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이 전설에 등장하는 아미산과 안샘, 그리고 두 그루의 은행나무 등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있다. 그런 점에서 술의 스토리를 온전하게 보존한 유일한 무형문화재라는 평가도 듣고 있는 것이다. 

백약지장의 전설에서 출발해 1986년부터 상업화의 길을 걸었지만, 면천두견주가 걸은 길은 다른 무형문화재에 비해 거친 황톳길이었다.

특히 2001년 기능보유자 박승규(1937~2001)씨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증류주에 대한 무리한 투자과정에서 금전상의 압박을 받으면서 급병을 얻은 것이 원인이었다. 

기능전수자가 없는 상황. 귀중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의 타이틀이 사라질 판국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김현길 회장의 노력으로 두견주를 빚어온 8가구 12인으로 보존회를 결성하고 무형문화재 재지정을 문화재청에 요청하면서 가닥을 겨우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 속에 2007년 기능보유자 없는 보유단체로 인정받게 되고, 주류제조면허를 다시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 면천두견주는 술과 관련한 스토리텔링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는 유일한 국내 명주이다. 사진은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위상에 걸맞은 외형으로 지난해 3월에 완공한 면천두견주 건물.

2007년부터 술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2001년 이후 수년간 술이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역에서도 잊힌 술이 됐다.

김 회장은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지역민심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3년간 생산한 술의 절반을 지역 주민들과 나누면서 두견주를 정상괘도에 올려놓게 됐다고 말한다. 그리고 2016년 문화재청과 도 예산으로 면천두견주 자체 건물을 갖게 돼 국가지정 문화재에 걸맞은 외형도 갖추게 됐다.

면천두견주의 술맛은 찹쌀로 빚어진 만큼 달큰하다. 면천에서 가까운 한산 소곡주와는 다르지만 그 맛의 원형은 백제 술에 있을 것 같다. 그런데 18도의 묵직한 알코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진달래꽃에서 풍기는 독특한 풍미가 알코올을 누르는 듯싶다. 음력 3월 진달래가 흐드러지는 계절에 두견주 한잔은 주당의 입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