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사정법인에 위자료 상한액 가이드라인 전달
‘법 위에 보험사’ 비판…“위자료, 판례 준용해야”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손해보험사들이 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사망사고에 대한 위자료를 축소 지급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정한 사망사고 위자료 기준은 1억원이다. 반면 일부 손보사들은 최대 10년간 6000만원을 상한선으로 두고 사망위자료 합의를 종용해왔다.

3일 대한금융신문 취재 결과 현대해상, K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등 손해보험 3개사는 손해사정법인을 대상으로 배상책임 담보와 관련된 사망보험금 위자료 산정 지침을 배포했다.

손해사정법인은 손해보험사 대신 사고에 대한 손해액을 결정하고 그에 따른 보험금을 산정한다. 보험사는 이 결과를 토대로 보험금 지급을 결정한다.

때문에 보험계약자와 보험사 사이에서 객관적인 보험금 산출을 위한 독립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손보사들은 배상책임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사망위자료를 6000만원까지만 지급해야 한다는 지침을 손해사정법인에 전달했다. 위자료 축소 합의를 사실상 압박한 것이다.

KB손보가 지난 2003년 손해사정법인을 대상으로 배포한 위자료 산정 지침에 의하면 장해 및 사망 건의 위자료 산정 시 상한액을 5000만원으로 정했다. 이는 지난 2008년 6000만원으로 한 번 상향됐다.

한화손보와 현대해상이 2014년, 2015년 손해사정법인에 배포한 배상책임 손해액 평가 지침에서도 사망위자료 산정기준은 각각 6000만원, 7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들 보험사는 피해자의 성향에 따라 위자료 금액 조정이 가능하다는 지침도 내렸다. ‘조기종결을 위해 금액 조정이 필요한 경우’, ‘악성 피해자로 민원이 예상되는 경우’, ‘소송 시 예상판결액(위자료)이 보험사가 정한 위자료 지급 지침을 현저히 상회하는 경우’ 등이다.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으려는 정황도 포착됐다. 한 문건에서는 ‘피해자가 위자료를 요구하지 않을 경우 위자료를 지급하지 아니할 것’도 명시돼 있다.

이러한 지급 지침을 확인한 건 손해보험 3개사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손보사가 이러한 지급기준을 손해사정법인에 전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손해사정법인 관계자는 “약 10년간 관련 업무를 하며 피해자의 사망 시 위자료를 6000만원 이상 합의해 본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위자료 6000만원 이상 건이 발생해 보험사에 지급요청을 넣어도 승인이 나지 않는다. 보험사의 업무위탁을 받는 손해사정법인 입장에서 보험사가 배포한 지침을 어기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의 판례가 있음에도 이보다 낮은 금액을 위자료 산정 기준으로 제시하는 것도 문제시 되고 있다.

배상책임보험은 법률상 손해를 보상하는 만큼 판례를 준용한다. 반면 이들 보험사의 사망위자료 산정 지침은 최근 법원 판례 및 서울중앙지법의 사망 위자료 산정 기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서울중앙지법이 인정하는 사망사고 인정금액(위자료)은 1억원이다.

실제로 자동차보험 표준약관 경우 지난 2016년을 기점으로 19~60세 사망위자료 기준이 45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상향됐다. 이 또한 서울중앙지법이 사망사고 위자료 기준을 1억원까지 올린데 따른 결과였다.

보험사의 ‘제멋대로’식 사망 위자료 합의금 기준은 보험 약관 내 사망 위자료 지급기준이 없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 독립손해사정사도 “배상책임 담보는 법률상 손해를 보상하는 만큼 판례를 준용해 보험금을 산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되는 곳이 서울중앙지법”이라며 “손해사정법인에서는 판례보다 보험사 지침을 앞세우며 상한액만 고수하다보니 위자료 합의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손보사들은 사망 위자료 합의 기준을 배포하지 않을 경우 피해자와의 다양한 상황에 탄력적인 대처가 어렵다고 항변한다. 소송 전 단계에서 원활한 합의를 위해 일정한 기준을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손해사정법인에게 (위자료 지급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한 이유는 판례마다 사망에 대한 판결 기준금액이 다르기 때문. 가이드라인 없이 모든 건을 소송할 순 없다”고 말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현장에서 단순 참고를 위한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현재 위자료 지급 심사 시 대부분 7000만~8000만원 수준으로 기준을 잡고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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