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막걸리 비법 면천 안샘 물과 만나 충청권 강자로 부상 

하루 2.5톤 쌀 증미하며 1만5000병 생산하는 알찬 양조장

▲ 면천주조는 당진은 물론 서산 태안과 평택 등 서해안 지역의 막걸리 강자로 부상한 술도가다. 사진은 면천 아미산과 안샘 중간에 위치한 면천주조 공장 전경.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다 아산만을 가르는 서해대교를 넘어서면 만나는 땅이 당진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당진은 안면도로 가는 길목쯤으로 기억되겠지만 술을 찾는 사람들에겐 이름 가진 양조장이 제법 많은 동네로 알려져 있다. 

1933년 창업해 3대째 술도가를 이어오며 대통령 만찬주와 삼성회장단 만찬주 등으로 선정된 바 있는 신평양조장과 장수막걸리의 기술본부장 출신인 성기욱 대표가 창업해 2010년 우리술품평회 막걸리 부분 대상을 수상했던 성광주조, 그리고 면천두견주의 전설이 깃든 아미산과 안샘 사이에 자리한 가운데 충청도 서부 해안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당진면천주조 등이 바로 그들이다.

그중 당진면천주조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인 면천두견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술도가이기도 하다. 고인이 된 면천두견주 기능보유자 박승규 대표가 처음 두견주 양조를 위해 술도가를 연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아미산의 물이 모이는 ‘안샘’은 인위적으로 판 우물이 아니라 자연스레 물이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는 선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우물의 깊이는 어른 무릎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물을 받아 두견주를 빚던 전통을 살리기 위해 아마산과 안샘의 중간 정도에 두견주 술도가가 처음 자리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박승규 대표가 고인이 되면서 면천두견주는 오랜 기간 방황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유는 기능 전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면천두견주는 두견주대로 2007년 보존회가 결성되기 전까지 그 술맛을 낼 수 없었고, 양조장은 양조장대로 10여 년 동안 술도가의 주인을 여러 차례 바꿔가며 혼돈의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현재의 강백구 공장장이 면천주조를 이끌면서 당진과 서산, 태안, 아산, 평택 등 서해안 벨트를 시장으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주조장이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앞서 소개한 성광주조의 고 성기욱 대표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성 대표가 성광주조를 만들어 독립하기 전까지 강백구 공장장과 함께 면천주조에서 막걸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성 대표의 장수막걸리 술 생산 이력 38년의 노하우가 면천의 안샘 물맛과 만나 충청도 땅에 맛있는 막걸리 하나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하루 1만5000병정도 생산을 해요. 그 술을 빚기 위해 하루에 2.5톤의 쌀을 술밥으로 쪄내고 있지요.”

강백구 공장장이 말하는 면천주조의 일일 생산량이다. 면단위 양조장의 생산 규모로는 상당한 수준이다. 강 공장장의 “충청도에서 1,2위를 다투기는 할 겁니다”라는 말이 허언은 아닌 듯싶었다. 

▲ 6년째 취미로 색소폰을 불고 있는 면천주조의 강백구 공장장이 연주에 몰입하고 있다. 강 공장장은 지역 행사에 색소폰 연주 봉사도 자주 나가고 있다고 한다.

면천주조의 술은 장수막걸리와 비슷한 공정으로 빚어진다. 15일에 걸쳐 입국과 누룩을 같이 사용해서 4번 술밥을 주는 4단 사입과정을 거쳐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통기한도 다른 양조장의 30일이 아닌 10일로 내보내고 있다. 술의 수요처가 많으니 당연히 유통기한이 길어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일하는 사람도 공장장을 포함해 총 9명이다. 요즘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알찬 양조장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봄기운 가득한 날 면천주조를 찾았을 때 강백구 공장장은 그의 취미인 색소폰 연주에 한창이었다. 6년째 불고 있단다. 면천 아미산 자락에서 주향천리의 진원인 주조장 앞마당에서 펼쳐진 그의 연주는 깨끗하게 정리된 양조장만큼이나 깔끔한 인상으로 남는다.

발효시설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 깃든 자신감도 색소폰 연주 실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싶다. 맛있는 막걸리와 그에 걸맞은 색소폰 연주의 콜라보. 봄날 면천에서의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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