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 오류배당, 신한금융 채용비리, 금감원장 해외출장건 등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던진 질문에 자문해야 하는 까닭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공무원의 ‘영혼 없음’을 정치권에서 강하게 질타한 적이 있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정책 방향에 거부의 몸짓도 없이 순응하는 태도가 마땅찮아서 구설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공무원의 영혼 없음’에 대한 면죄부와 같은 글이 있다. 

“진정한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그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1919년 1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 항복 선언을 한 지 두 달이 지난 뒤 뮌헨의 대학생들은 당대의 석학인 막스 베버에게 강연을 요청한다. 그가 영면에 들기 한 해전의 일이다. 20세기 현대사의 첫 번째 질곡인 1차 대전이후, 그것도 패전국 독일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젊은이들은 어떻게 당대를 살아가야하는 지를 묻는 강연이었다. 

1918년 패색이 짙어갔던 독일은 서부전선에서 총공세를 펼쳤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끝내 킬 군항 수병들의 반란으로 빌헬름 2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하고 만다. 결국 그해 11월 항복을 선언한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수립한다. 하지만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의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 ‘이즘’은 문자에 지나지 않았고, 혁명에의 뜨거운 열망은 곳곳에서 미세한 틈새만을 찾고 있었다. 한마디로 혼돈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 석학은 즉답을 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예언자적 잠언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강연은 무미하기까지 하다. 그 강연을 묶은 책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이다. 

이 강연에서 막스 베버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것을 권한다. 현실을 읽어내지 못한 정치인들과 군인들이 20세기 초에 벌였던 전쟁과 그 후과를 짊어져야 하는 독일. 그것을 냉철하게 바라봐 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그리고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력을 갖고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는 답 하나를 내놓는다. 그리고 그 균형각각은 “내적 집중과 평정 속에서 현실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라며 “거리감의 상실은 그 것 자체로서 모든 정치가의 가장 큰 죄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분노도 편견도 없이 직무를 수행해야하는 관료에 대해 베버가 언급한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인은 열정과 균형적 판단력을 갖고 현실을 제대로 읽어내면서 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관료는 정해진 정책을 불편부당하게 추진하는 집단이므로 어딘가에 편향되어 있으면 안 된다고 베버가 지적한 것이다. 도덕적 자기통제와 자기부정이 없다면 조직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막스 베버가 영면한지 내후년이면 100년이 된다. 그가 풍전등화 같은 운명에 처한 독일 젊은이들에게 던져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는 그의 책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삼성증권 직원의 실수로 발생한 배당오류 사고와 이에 대한 금감원의 실사 착수, 그리고 무풍지대로 여겨왔던 신한금융에서도 발생한 채용비리 사건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의원시절의 부적절한 회의 출장 등 하루가 멀다 하고 금융권 관련 기사가 지면을 가득 채웠던 한주였다. 이밖에도 그동안 관행처럼 여기며 눈감았던 비리들이 다음 기사감이 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문하자. 과연 직원들은 도덕적 자기통제와 자기부정 속에서 조직을 우선하는 삶을 살아왔을까? 그리고 기관의 장과 금융회사의 경영진들은 열정과 균형적 판단력을 갖추고 현실을 읽어내기 위해 거리두기를 유지했을까? 아마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수천 년간 말로만 변화와 혁신을 외친 조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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