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조직 바꾼다고 ‘새 술 넣은 새 부대’라 할 수 없는 까닭

한 달 새 두 명의 감독기관장 교체될 정도로 금융권은 철옹성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성경>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새 술을 빚어 헌 가죽부대에 넣으면 가죽부대도 찢어지고 당연히 넣은 술도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예수 생존 당시 레반트 지역의 포도주 양조기법을 읽어낼 수 있는 기록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및 로마,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에선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흙으로 구운 암포라를 포도주 발효조로 사용했다. 지중해 연안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암포라 유적을 통해 포도주 무역에도 암포라가 주로 사용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이 지역에선 갓 짜낸 포도즙을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넣었다고 한다. 따라서 포도즙이 발효하면서 생기는 이산화탄소의 압력을 견뎌내야만 제대로 된 포도주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새 가죽부대는 부드럽고 신축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발효과정을 견뎌낼 수 있지만, 몇 차례 사용한 헌 부대는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터지고 만다. ‘금식’을 두고 예수와 바리새인들이 논쟁하는 가운데 등장한 이 구절을 <성경>에 남긴 기자는 ‘누가’다.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새로운 사고의 틀이 필요하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는 포도주 양조 과정을 빗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기자 ‘누가’가 이 구절과 함께 빼지 않고 기록한 새로운 틀거리의 필요성을 강조한 예수의 비유가 하나 더 있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

이 같은 비유는 급격한 변화나 국면이 바뀌는 전환의 순간마다 사용하는 관용어가 됐을 정도로 자주 인용돼 왔다.  

지난해부터 금융권이 분주하다. CEO의 주가조작 사건 및 채용비리 등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리딩 경쟁을 펼치는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은 그래도 CEO리스크까진 발생하지 않아 버텨낼 여력이 있지만 지방의 금융지주사들은 상황이 넉넉하지는 않는 듯싶다. 직무대행체제로 지주사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대행체제는 아니더라도 공백이 발생한 계열사 대표를 새로 임명하면서 리더십의 공백을 최소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면 흔하게 인용하는 말이 앞서 인용한 “새 술은 새 부대에”이다. 새로운 CEO가 선임되고, 후속 인사를 통해 지주사 전체의 체제를 정비하는 등 발 빠르게 분위기 전환을 모색한다. 그런데 CEO가 바뀌고 계열사 대표가 새로 임명된 것만으로 새 부대에 새 술을 넣었다고 평가해야 하는지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채용비리 문제가 CEO가 바뀌었다고 근절되는 것은 아닐 것이고 주가조작이라든지 여타의 금융사고가 조직을 정비했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인사라면 헌 옷에 새 옷 조각을 붙이는 꼴일 것이다. 특히 IMF 구제금융 이후 30년 동안 철옹성처럼 금융권을 지배한 문법과 문화는 변함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리더의 ‘언어’로써 강조한다고 새 부대에 새 술을 넣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자 ‘누가’의 위 기록 말미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함이니라”라고 적고 있다. 묵은 포도주가 새 포도주보다 입맛에 잘 맞는다는 뜻이다. 인간의 속성상 익숙한 현실에 안주하기 십상이라는 은유가 담긴 구절이다. 그래서 개혁과 혁신이 어려운 것이다. 지난 30년간 우리 금융권은 어떠할까. 단 한번만이라도 헌 부대를 청산한 적이 있었는가. 그랬다면 감독기관의 장이 연거푸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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