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출신 올솝 대표가 이끄는 부산 크래프트 맥주 성지

‘더블IPA·고제·임페리얼 스타우트’ 등 국내 첫 출시 명성이어가

▲ 2014년 부산에서 처음 만들어진 갈매기브루잉. 사진은 이 양조장의 양조사들이며 왼쪽부터 서민식, 정지원, 스티븐 올솝 대표, 그리고 그 오른쪽이 수석양조사 라이언 를락커다. <제공 : 갈매기브루잉>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눈처럼 희고 구름마냥 둥실한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인도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줄곧 따라온 갈매기 두 마리. 남과 북에 두고 온 여인들의 잔영에 대한 비유다. 최인훈은 이명준을 통해 절실히 보고 싶은 갈구의 대상으로 갈매기를 상징화했다. 안톤 체홉의 희곡 <갈매기>에선 등장인물들 자신들이 원하는 각자의 이상이 갈매기로 대상화됐다. 이처럼 인간은 갈매기에게서 간절한 ‘무엇’을 담고 싶어 한다. 그래서일까. 야구의 도시 부산 롯데 팬들은 경기장에서 목이 터져라 ‘부산 갈매기’를 부른다. 우승에 대한 염원이 갈매기에 투명된 것이다. 

부산 최초의 수제맥주 양조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갈매기 브루잉’의 2대째 대표인 스티븐 올솝에게도 수제맥주는 ‘갈매기’같은 존재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올솝 대표가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 처음 부산에 온 것은 2010년경. 영어를 가르쳤던 그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맥주를 외국인 친구들과 홈브루잉(자가양조)하면서 인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수제맥주가 그에게 ‘갈매기’로 다가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라거 일색의 국산 맥주와 수입 및 통관 절차를 거치면서 상미기간을 훌쩍 넘겨 국내에서 유통되는 수입맥주가 전부였던 시절, 올솝 대표는 자신이 만든 맥주를 한국 친구들과 나누면서 고품질의 맥주라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기존 제품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상품을 만들면 시장도 바뀔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원론 같은 그의 믿음은 내재돼 있던 ‘사업가적 기질’에 발동을 걸게 한다. 처음에는 홈브루잉을 같이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바를 차렸다. 질 좋은 맥주라는 그의 이상을 갈매기브루잉에 담아내는 전초작업이었다. 그리고 1년 뒤인 2014년, 맥주양조장을 낸다. 하지만 자녀의 교육문제로 1대 대표인 스테판 터코트가 2016년 7월 캐나다로 돌아가게 되자 그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2018년 갈매기브루잉은 부산지역에 5개의 펍(남천동, 해운대, 남포동, 서면, 경성대점)을 가진 부산 크래프트 맥주의 대표명사로 자리 잡게 된다. 

▲ 갈매기브루잉은 부산지역에 5개의 펍을 운영할 만큼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수제맥주 양조장이다. 사진은 본사가 위치한 남천동의 펍 전경이며 오른쪽으로 브루어리가 보인다. <제공 : 갈매기브루잉>

갈매기브루잉이 만드는 맥주는 수제맥주 붐을 처음 일으켰던 미국식 에일 맥주를 지향하고 있다. “가벼운 맛에서 부터 홉의 향과 맛이 듬뿍 담긴 맥주까지, 그리고 색이 짙은 맥주에서부터 맛이 풍부한 맥주까지, 수제맥주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의 맥주관을 밝힌 올솝 대표는 갈매기브루잉이 지향하는 맥주의 세계도 다양성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런 노력 중에는 재미있는 시도들도 담기게 된다고 말한다. 그 시도들이 낳은 결과는 더블아이피에이, 고제, 트리플아이피에이 그리고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갈매기브루잉에서 국내 첫 출시했다는 명성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올솝 대표는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다음 맥주를 알려주겠단다.

갈매기브루잉의 맥주는 올솝 대표가 맥주의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에서 만난 맥주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맛봐왔던 영국의 맥주들, 그중에도 민타임 양조장의 맥주와 미국 크래프트 붐의 원조격인 시에라 네바다 맥주를 주로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맥주회사로 성장한 브루독의 팬이기도 하단다. 이 같은 경향성이 갈매기 맥주에도 일정하게 영향을 준 듯싶다. 

사우어맥주를 전문으로 하는 ‘와일드웨이브’, 전통 체코식 라거 맥주로 승부를 걸고 있는 ‘프라하993’, 스타우트의 술맛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고릴라’ 등 다채로운 부산맥주 시장에서 갈매기는 전통파 투수처럼 느껴지는 까닭이 바로 이런 경향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다와 영화, 그리고 이제부터는 맥주 맛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충분히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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