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제조장 100곳 넘어서면서 맥주 맛의 ‘르네상스’ 주도하지만

수입맥주, 신고가격에 주세 부과해 국산맥주보다 저렴하게 판매가능

▲ 2014년 주세법 개정 이후 수제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소규모 맥주제조장이 100여 곳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 들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 제품만 2000종 가까이 될 정도로 맥주 맛의 ‘르네상스’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사진은 성수동에 위치한 어메이징 브루어리의 탭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지난 1988년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은 맥주다. 그 당시 맥주 시장은 ‘오비와 크라운’, 쌍두마차시대였다. 지금은 낯선 이름이지만 당시엔 이 두 회사가 맥주 시장을 과점하고 있었다. 통상마찰 해소 차원에서 1984년 맥주가 수입 자유화되지만 수입맥주는 미약한 존재였다. 올림픽이 열리기 한 해 전 우리나라의 외국술 전체 수입액이 2300만달러였고, 이 중 맥주는 2.4%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수입맥주가 ‘1만원에 4캔’을 주는 편의점 마케팅의 힘입어 맥주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맥주의 수입액은 3000만달러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수입액은 2억6000만달러다. 한마디로 폭발적인 성장을 한 것이다.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이 10%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인데, 최근에는 5000원에 4캔을 주는 맥주가 수입되고 국산 브랜드의 맥주를 외국에서 생산해서 역으로 수입하는 일까지 진행되면서 연일 맥주 관련 기사가 지면을 메우고 있다. 이처럼 증가세가 가파른 것은 편의점 및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유통채널에 수입맥주가 차고 넘치는 가운데, 가격에서의 메리트와 라거 일색의 국산 맥주에 실망한 애주가들의 수요가 겹쳤기 때문이다. 

허점 많은 주세 체계
그런데 수입맥주가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될 수 있는 핵심요인은 허점이 많은 현행 주세 체계에 있다는 것이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다. 맥주의 주세는 72%. 고율의 세금이다. 이 상황에서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와 마케팅비 그리고 이윤 모두를 합친 가격에 주세가 매겨지는 반면, 수입맥주는 신고된 수입원가에 주세가 부과된다. 게다가 맥아를 10% 이하로 사용한 맥주는 기타주류로 분류돼 30%의 주세가 매겨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세계적인 주류기업인 AB인베브가 소유하고 있는 국내 맥주 1위기업인 오비에서는 국산 브랜드인 카스를 ‘러시아월드컵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만들어 수입해 기존 카스보다 12% 저렴하게 판매할 계획이란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주세체계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종가세(가격에 세금을 매기는 방식)의 주세 체계 하에서 오래전부터 맥주의 주세문제가 주류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맥아 10% 이하의 발포주까지 수입되면서 현행 주세제도 허점에 대한 비판도 늘고 있는 것이다.

수제맥주 업계 역차별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하고 수제맥주를 생산하고 있는 곳이 100곳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들 100여 곳의 브루어리(맥주양조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맥주만 2000종 정도한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 맥주의 폭도 넓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중복되는 스타일이 많기 때문에 맥주 스타일로는 맥주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에 미치지 못하지만 2014년 이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맥주 수입이 급증하면서 수입맥주의 시장점유율이 10%를 넘어선 상황이다. 맥주에 대한 주세 체계의 문제로 수입맥주는 신고가에 주세가 부과되는 형태라 탄력적인 가격 정책을 통해 국내 시장을 파고 들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강릉에 위치한 버드나무 브루어리의 맥주 시음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요사이 중소형 브루어리들의 고민은 커져만 간다. 수입맥주가 국산 맥주를 역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주세의 허점으로 인해 국내 브루어리들은 수입맥주와의 가격경쟁력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다. 규모의 경제를 누리고 있는 대기업 맥주와 비교해도 생산원가가 높은 중소형 브루어리들의 맥주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 원재료비 및 임대료, 인건비 등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종가세의 주세제도는 주세마저 더 많이 매겨야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불리한 주세제도인데, 수입맥주의 탄력적인 가격정책은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 맥주를 수입하고 있는 곳들이 맥주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인 오비와 하이트진로, 그리고 주류회사인 롯데주류 등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산 맥주의 판매 저조를 수입맥주에서 벌충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종가세가 갖는 주세제도로서의 한계와 원가구성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수입맥주의 주세로 인해 한참 시장을 조성하며 성장하고 있는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위협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세에 대해 합리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하는 시기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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