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담당 공무원도 맛과 향에 반해 식품명인 ‘1호’ 타이틀 갖게 된 술

벽암스님, 사찰 법주 전통 유일하게 유지하며 연간 2천병 소량생산

▲ 송화양조의 공장장이자 송화백일주 기능전수자인 조의주씨가 고랭지 누룩을 만들때 사용하는 육각형 누룩틀을 보여주고 있다. 정확한 연대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벽암스님의 스승때부터 사용돼 전수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불가와 술은 상극이다. 지켜야 하는 핵심계율에 불음주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에 얽힌 술에 대한 인연은 많기만 하다. 곡차를 즐긴 스님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술을 만들었던 사찰 이야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
 
반승반속의 경지에서 선승으로 이름을 드높인 조선 중기의 진묵대사와 구한말의 경허선사는 특히 곡차와 얽힌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 어디 이뿐이라. 고려시대 이래 사찰에서 빚은 누룩을 일반에 판매하기도 했고, 이 같은 전통은 1910년대까지도 이어져 왔다고 한다.

또한 치료 목적으로 술을 만들었는데, 대형사찰치고 자신들의 법주가 없는 곳이 없었을 정도로 비방으로 전해져 온 사찰의 술도 다양했다고 한다. 하지만 8.15 해방 이후 청정비구의 조계종 중심으로 종단 정화운동이 진행되면서 술은 다시 금기의 언어가 된다. 식민통치와 전쟁, 그리고 재건으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역사적 격변의 시기, 불가의 술은 금단의 질서에 다시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찰의 법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남아 있었더라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전까지 그 술은 밀주의 영역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불음주의 계율이 엄연한데 왜 사찰에선 술을 빚은 것일까? 이유는 선수행에 있다. 참선 수행을 하는 주요한 선찰들은 주로 높은 산에 위치한다. 암자로 지어진 경우도 있고 토굴에 의존해 수행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의 흔적이 드문 곳에서 고요하게 참선을 하고자 한 것이다. 

▲ 송화백일주의 재료는 수왕사 주지 벽암스님과 기능전수자 조의주씨가 날을 택해 채취하고 정성으로 관리해서 술을 빚는다고 한다. 사진은 벽암스님이 채취한 솔잎을 세척하는 장면. <제공 : 송화양조>

하지만 이런 곳에서 장기간 생활하면 고산병과 냉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불가에선 비상약을 필요로 했고, 그것이 각종 비방으로 담은 불가의 법주였던 것이다. 증류주의 출발점이 약이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량의 알코올을 응급한 환자에게 투여해 기운을 돋우고자 했던 것은 동서가 같았던 것이다.  

전주 모악산의 수왕사는 비전으로 13대를 거쳐 이어져 온 사찰의 법주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농식품부가 지정하고 있는 식품명인 제1호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제6-4호)로 등재돼 있는 벽암스님과 송화백일주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전해 완주 모악산 인근에 위치한 송화양조를 찾아 벽암스님(수왕사 주지)을 만났다. 스님이 쏟아내는 송화백일주의 이력은 다채롭기만 했다. 1300년전 수행을 위해 모악산 앞을 거쳐 금강산을 향하던 부설과 영의, 영조 세 스님의 이야기부터 소나무가 갖고 있는 약성과 각종 주방문에 등재돼 있어, 역사 속에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송화백일주 이야기까지 예정시간을 넘겨가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국내 최초로 식품 명인으로 지정되는 과정 또한 고된 길이었다. 술과 관련한 행정은 국세청에서 주도하던 시절, 술을 만드는 명인을 농림부에서 추진하려다 보니 부처간 칸막이가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농림부의 한 과장의 기지로 술맛을 보고 난 뒤 명인제도가 도입됐을 정도로 송화백일주의 술맛은 특별하다.

벽암스님이 만드는 술은 송화옥곡주와 송화백일주. 송화오곡주는 콩, 팥, 수수, 보리, 조 등의 오곡과 찹쌀, 멥쌀로 고두밥을 지어 송홧가루와 자신이 빚은 고랭지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술이다. 이 술이 진묵대사가 즐겼다는 술이며, 이를 증류해서 구기자와 산수유 및 송화와 솔잎 등을 넣어 침출시키면서 100일가량을 숙성시킨 술이 송화백일주이다. 

1년에 두 번 술을 빚어 약 2000병 정도만 생산하는 술이니 시쳇말로 희귀템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공장장을 겸하고 있는 13대 전수자인 조의주씨는 이 술의 상업화에 대해 큰 뜻이 없어 보였다. 사찰의 법주로서 불교문화의 한 가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고산병에 걸린 승려에게 한두 방울의 송화백일주가 생명을 구하는 귀한 약이듯, 마시고 취하기 위한 술이라기보다 한잔을 음미하며 힐링하는 술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혔다. 어쩌면 송화백일주가 갖는 21세기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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