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배상책임담보, 보험사 절반은 임신 중 지급거절
같은 약관도 해석 따라 달라…보험금 늑장지급 원인

<대한금융신문=박영준 기자> #산모인 A씨는 배수관 사고로 아랫집에 수리비 400만원을 보상해줄 처지에 놓였다. A씨는 B보험사에서 가입한 일상배상책임보험을 통해 해결하려했지만 B사에서는 C보험사에서 가입한 어린이보험에도 가족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보험 담보가 있다며 수리비의 50%만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C보험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며 보험금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태아 때 가입한 ‘가족 일상생활 중 배상책임보험(이하 가족 배상책임보험)’의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고무줄 잣대가 어린이보험 가입자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배상책임보험은 피보험자(보험금 지급의 대상)에게 법률상 배상책임사유가 발생할 경우 보험사가 피해자에게 대신 피해액을 보상해준다.

가족 배상책임보험은 피보험자의 범위가 부모 등 가족으로 넓혀진 담보다. 대부분의 손해보험사에서 어린이보험 내 특약 형태로 판매 중이다.

7일 대한금융신문이 어린이보험을 취급하는 8개 손해보험사를 조사한 결과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한화손해보험, 롯데손해보험 등 4개사는 태아 때에도 가족 배상책임보험의 보험금을 지급한다.

반대로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흥국화재 등 4개사는 태아 시기에는 보험금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어린이보험은 출생 전 담보와 출생 후 담보로 나뉜다. 산모의 주산기질환, 유산, 임신중독증 등이나 태아의 선천이상, 뇌졸중, 중증 아토피 등은 출생 전 보장하는 담보로 분류된다.

반면 가족 배상책임보험은 출생 전과 후에 대한 구분이 불분명하다. 때문에 보험사마다 보험금 지급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태아 시기에도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보험사들은 태아의 출생 시기와 보험금 지급에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자녀가 태어나기 전이라도 부모가 피보험자의 범위에 속하기 때문에 부모가 불법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을 경우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보험에서 가족한정운전 특약에 가입하면 운전자의 범위가 가족 전체로 확대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는다는 보험사들은 태아가 약관에서 규정하는 ‘피보험자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가족 일상배상책임보험은 보험증권에 기재된 피보험자와 그 친족을 범위로 하는데 태아는 법적으로 ‘피보험자’에 속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한 보험사 관계자는 “(가족 배상책임보험) 약관의 대상범위가 피보험자의 주민등록등본상 동거 중인 친족”이라며 “자녀가 태어나서 등본에 등재되지 않은 경우는 보험금 지급에서 예외”라고 말했다.

이처럼 보험사마다 다른 약관 해석으로 가입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 보험사고 시 보험금 산정을 담당하는 손해사정업계의 중론이다. 배상책임보험은 중복 가입 시 보험사가 보험금을 나눠 지급(비례보상)하는데 보험사간의 분쟁으로 보험금 지급만 늦어진다는 것이다.

보험사와 보험계약자간 정보비대칭도 문제로 거론된다. 어린이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은 보험사마다 다른 보상기준을 알 수 없다. 어린이보험 약관을 살펴봐도 가족 배상책임보험이 태아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는 직접적인 문구를 찾아볼 수 없다.

한 손해사정업계 관계자는 “태아가 피보험자로 성립하지 않아 보험금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린이보험료를 내고 있는 보험가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보험사마다 비슷한 약관으로 다른 보험금 지급 기준을 두다보니 민원이 생겨도 어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보험사의 약관 심사 및 감리 권한이 있는 금감원 보험감리국 관계자는 “일상, 자녀, 가족 등으로 피보험자 대상이 세분화된 배상책임담보들은 보험사마다 약관을 다르게 기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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