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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우리술 86]포천의 과거 명성 되찾는 ‘1932포천일동막걸리’
[응답하라, 우리술 86]포천의 과거 명성 되찾는 ‘1932포천일동막걸리’
  • 김승호 편집위원
  • 승인 2018.06.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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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맛 상상하며 만든 프리미엄막걸리 ‘담은’으로 시장 차별화

와인 닮은 흑미 막걸리와 항산화물질 등로 특화된 마케팅 펼쳐 

▲ 지리적 표시제가 도입되기 훨씬 이전부터 군 전역자들의 입소문으로 국내 막걸리 업계 최초로 전국적 명성을 획득한 ‘포천막걸리’. 사진은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1932포천일동막걸리’의 공장 전경.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을 통해 ‘감홍로, 죽력고, 이강고’ 등을 조선의 3대 명주로 거론한 시기는 해방 직후인 1946년의 일이다. 1906년 일제에 의해 주세령 및 주세법이 시행되면서 가양주 전통이 사라졌지만, 해방 당시까지는 그래도 전통주 명맥은 유지됐던 것이다.

하지만 고질적인 식량난을 겪으면서 60년대 들어 정부는 쌀로 술 빚는 일을 강력하게 통제한다. 그 결과 20세기 후반기 내내, 우리는 손으로 빚은 것이 아니라 공장에서 만들어진 술들을 소비하게 된다. 그리고 막걸리와 소주, 맥주 등의 보통명사들은 술을 통칭하는 대표명사로 자리하게 된다.

하지만 막소주와 막걸리가 허기지게 가난했던 시절의 대표 술로 불렸지만, 일부 지역의 술들은 법률로 정해진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육당의 <조선상식문답>과 다른 관점에서의 명주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산소곡주, 안동소주처럼 지역 이름을 사용하는 ‘지리적 표시제’가 도입되기 훨씬 이전인 1970~80년대. 전국의 막걸리 주당들이 맛보고 싶어 했던 술, ‘포천 막걸리’ 이야기다.

물이 좋고, 군부대가 집중돼 있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대형양조장이 많았던 포천의 막걸리는 군대와 함께 성장한 술이라 할 수 있다. 고된 훈련이 끝난 뒤 사기 진작을 위해 허용된 막걸리 회식에서 맛봤던 포천 막걸리는 젊음의 한 시절, 그들의 DNA에 새겨진 술이 됐다. 하지만 법률에 따라 지역 경계를 넘어 유통시킬 수 없었기에, 이 술은 군 전역자들의 구전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포천막걸리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지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막걸리 위상의 쇠락과 함께 포천막걸리의 명성도 지난 20년 동안 같이 위축되고 만다. 일본 수출이 급감하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져만 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포천’의 저력을 발휘하며 새로운 상황에 맞춰 변신하는 양조장이 있다. ‘상신주가’라고 불렸던 ‘1932 포천일동막걸리’(대표 김남채). 술도가 이름에서 밝히고 있듯 1932년에 만들어져 40대째로 이어져 가는 전통 있는 양조장이다. 이동막걸리와 함께 ‘포천’의 명성을 이끌었던 이 양조장은 일본 수출이 한창일 때(2010년경) 매일 2대분의 컨테이너를 출하했다. 이렇게 막걸리가 팔렸으니 연매출 또한 100억원을 상회했다고 한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관계만큼 대일본 막걸리 수출도 급랭한다. 여기에 젊은 층의 기호마저 변하면서 여느 막걸리 양조장처럼 일동막걸리도 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비용을 줄이면서도 맛은 더 좋은 막걸리, 즉 기존의 일본식 입국 막걸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급스러운 막걸리로 차별화하지 않은 한 답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 ‘1932포천일동막걸리’의 김기갑 이사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고 새로운 프리미엄막걸리의 개념을 떠올렸다고 한다. 사진은 김 이사가 발효실에서 익어가는 막걸리를 설명하는 장면.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이 술도가의 공장장인 김기갑 이사. 어느 날 사무실에서 창문 넘어 보이는 ‘맑은 하늘 위에 뜬 구름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상상력은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졌단다. “아마도 포근하고 달콤한 맛이지 않을까. 그리고 신맛은 적을 것 같아.” 

김 이사는 바로 머릿속에 그려진 구름의 맛을 술로 구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쌀의 하얀색 부분의 맛을 극대화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쌀을 고두밥으로 짓지 않고 발효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당시 농진청과 배상면주가 및 국순당에서 생쌀 발효 기술을 개발했을 때였다. 김 이사는 자신의 상상만으로 그 맛을 구현하기 위해 실수에 실수를 거듭했다고 한다. 결국 밀을 사용하지 않고 이화곡 방식으로 누룩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고 ‘담은’이라는 술을 생산하게 된다. 여기까지 오는데 2년이 걸렸다고 한다. 

‘담은’은 백미와 흑미 버전으로 두 종류를 만들었고, 여기에 땅콩 새싹의 항산화물질을 넣은 프리미엄 버전까지 개발해 고급 식당 및 골프장 등 타깃 마케팅도 펼치면서 포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는 중이다. 

김 이사는 여기서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 사라지는 술도가의 운명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는 상상한다. 막걸리의 상상 그 이상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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