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누아·샤르도네 등 수확시기 및 줄기투입 기획자 최종 결정

은행 이익 위해 수동적 의사결정 했다는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지난 봄 오랜만에 와인 영화 한편이 극장가에 올려졌다. 서로 다른 성격의 3남매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부르고뉴의 넓은 포도원에서 자신들의 와인을 완성시켜나는 내용의 영화였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우리말 영화 제목이다.

와인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부터 아버지와 자주 충돌해야 했던 첫째 ‘장’. 그는 아버지의 곁을 떠나 10년간 자신의 와인을 완성시키기 위해 세계의 와인 산지를 돌다 신대륙에 와이너리를 차린다. 천혜의 토양조건을 갖춰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와인산지가 된 호주가 그가 정착한 곳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막내아들 ‘제레미’는 부르고뉴의 또 다른 와이너리의 사위가 된다. 하지만 와인을 접근하는 방식부터 모든 것이 아버지와 달랐던, 그래서 생경하기만한 처가살이를 해내야했다. 그리고 실질적인 아버지의 후계자인 둘째 ‘줄리엣’. 그는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집안의 와인을 지켜내듯 만들어온다.   

영화는 위독한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3남매가 10년 만에 재회면서 시작된다. 때로는 어색하고, 때로는 반가운 남매의 만남. 하지만 상속 받은 유산은 3명 모두가 균등하다. 포도원과 와이너리를 유지하기 위해선 셋이 다 뭉쳐있어야 가능하다. 와인도 3남매의 장점이 모아져 단점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상황. 영화는 쉽지만은 않은,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모여 있으면 해결되는 갈등과 오해를 풀어가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자신들이 각자 생각했던 와인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흩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한 사람의 선택이 다른 구성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구조. 아버지가 그린 그림은 3남매가 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부르고뉴의 4계절을 거치면서, 시간의 미덕으로 진가를 발휘하는 부르고뉴 와인처럼 세 남매의 재회도 숙성미를 채워간다. 그리고 힘을 합쳐 와이너리를 지켜내고 최고의 와인을 만들어냈다. 아버지가 3남매에게 바랐던, 그리고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가 그리고자했던 이 영화의 미덕이기도 하다. 샤르도네와 피노누아, 부르고뉴의 대표적인 품종들이 영화 가득 짙은 와인향을 발산하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하는 미덕은 하나의 마음과 선택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보태지는 고풍스러운 부르고뉴의 1년의 풍광은 3남매와 그들의 와인이 숙성시키는 훌륭한 조미료 역할을 해주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좋은 와인은 와인 기획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어떤 와인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으면 와인은 자신의 특성을 잃고 만다. 부르고뉴의 힘 있는 피노누아, 그래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나 맛과 향이 열리는 이 품종이 그려낼 와인은 수확시기와 포도즙에 포함된 잔줄기의 양에 달려 있다. 줄기가 만들어내는 타닌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샤르도네 또한 적기에 수확하지 않으면 드라이하면서 부드럽게 입안에 감기는 산미는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와인 기획자의 선택과 결심을 중심축에 두고 영상을 구성하고 있다. 부르고뉴의 도멘(포도원과 와이너리에 대한 부르고뉴식 표현)과 메종(네고시앙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들이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날리고 현재도 와인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원동력을 영화는 잔잔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역사성이 전통으로 자리하고, 부르고뉴 와인만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시장을 이끄는 힘. 그래서 부르고뉴를 빼고 와인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 같다. 

“은행의 이익을 고려해 사건 관련 임직원 의견을 제기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처리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이 최근 자신의 공판, 모두진술을 통해 사건 관련 임직원의 선처를 바라며 밝힌 소회다. 

은행장이 전체 일을 장악하고 주도적으로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은행장의 책임 속에서 이뤄진다. 언제 시작됐는지도 확인할 수 없는, 그래서 관행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직원 채용 청탁문제는 차치하자. 하지만 비자금 조성을 위한 상품권 깡의 문제는 전혀 다르다. 그리고 ‘은행의 이익’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횡령과 배임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모습은 재판에서 유의미하겠지만, 리더의 덕목은 아니다. 

와인 기획자가 와인의 맛과 향을 책임지듯 은행장은 임직원들과 함께 은행이 지향하는 초목표를 달성해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은행의 이익’은 모든 은행이 갖는 핵심가치이다. 이 가치는 수동성에 의해 취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택과 결정 속에서 일궈진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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