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금융업의 기본, 소비자 관점에서의 혁신은 반드시 필요

미국 신대륙 와인, 혁신 통해 와인 소비자에게 쓸모 확인 받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신대륙 와인인 미국 와인은 1976년 ‘파리의 심판’ 이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다. ‘파리의 심판’은 프랑스 와인이 최고급 와인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시절, 누구도 철옹성같은 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넘볼 수 없던 시절에 벌어진 와인업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최상급(그랑크루) 와인들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 결과, 미국산 와인에 완패를 했기 때문이다.

이후 신대륙 와인은 구대륙 와인과 어깨를 겨누면서 세계 와인 시장을 분점해 가게 된다. 하지만, 신대륙 와인의 위상이 높아지기까진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16~17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신대륙 와인업계는 실패로 점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즉 500년쯤의 시간이 흐른 뒤에서나 어깨를 펼 수 있게 된 것이다.

구대륙인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도 포도나무가 있었듯이 신대륙에도 다른 품종이지만 포도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신대륙에 도착한 유럽인들은 와인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 와인으로 자국 수요를 조달해야 했던 영국은 신대륙 와인이 절실했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제임스 1세는 식민지 미국이 영국의 포도원이 돼 주길 간절히 바랐던 인물이다. 그래서 이민자들에게 포도나무 식수를 강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신대륙 토착 품종으로 빚은 와인은 맛이 형편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식민지 개척에 나선 유럽 나라들은 자신들의 품종을 신대륙에 이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그런 와중에 포도뿌리에 기생하는 필록세라라는 진딧물까지 말썽을 부리게 된다. 이 진딧물은 19세기 유럽의 포도원을 초토화시킨 무서운 곤충이었다.

결국 텍사스의 한 원예학자가 필록세라에 내성을 가진 신대륙 토착품종에 검증된 맛을 가진 구대륙의 포도 품종을 접목시키는 방법을 찾기 전까지 미국의 포도원들은 실패를 거듭했던 와인의 흑역사를 겪어야 했다. 이 방법으로 포도원들이 재기할 수 있었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진 않았다. 구대륙 와인에 길들여진 보수적인 입맛과 전면 승부를 벌여야했기 때문에 신대륙 와이너리들은 혁신의 노력을 거듭해야 했다.

그러나 운명은 좀처럼 신대륙 와이너리 편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포도품종의 접목을 통해 필록세라 공포에서 벗어났지만 이내 미국은 금주령 시대로 접어들고만 것. 술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사회, 여기서 와이너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1933년 대공황 이후 금주법이 풀리기까지 또 다른 암흑기를 겪어야 했다. 그리고 40년의 악전고투가 1976년 ‘파리의 심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쓸모 있는 금융을 해달라는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요청이 있었다. 국어사전에 ‘쓸모’의 뜻은 쓸 만한 가치, 또는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으로 정의되고 있다. 쓸 만한 가치란 어떤 일에 쓰임새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윤석헌 금감원장이 은행장들과의 첫 대면에서 ‘쓸모’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신뢰회복을 주문한 까닭은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수년째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는 금융권의 채용비리, 그리고 최근 드러난 대출금리 부당부과, 여기에 기사화되지는 않았지만 소소하게 발생한 금융사고들을 들어 꺼낸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윤 금감원장은 “금융권의 맏형인 은행이 쓸모 있는 금융, 도움이 되는 금융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실패를 거듭했던 미국의 와인업계와 달리 국내 금융권은 실패의 경험이 매우 적다. 위기가 봉착했을 때마다 국가가 나서 제도를 바꿔줘 위기를 모면하곤 했던 은행들이다. 그래서 금감원장과 일부 은행장들이 쓸모와 관련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쓸모를 위해선 소비자 입장에서의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신뢰는 금융업의 기본이다.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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