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발언 이후 여야 은산분리 완화 잠정 합의

금융혁신·핀테크발전 효과 의문, 기업 사금고화 우려도

<대한금융신문=염희선 기자>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여야는 산업자본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보유 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당론이었던 ‘은산분리 규제 완화 반대’를 철회하고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으며, 자유한국당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환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핀테크산업 발전, 금융혁신,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의 근본방안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아니라는 금융권의 의견은 외면 받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설립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가 향후 금융 부실의 시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 한마디에 은산분리 완화 ‘일사천리’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일 한 행사에서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규제혁신이 핀테크산업을 개척하고, 금융산업 발전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름휴가 이후 대통령의 첫 혁신 행보에 여야는 곧바로 합의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와 관련한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세부사항을 조율해야겠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결국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번 움직임이 정치권 및 금융권 등과 어떠한 논의도 없이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은 전 정부 시절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강하게 반대한 바 있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다수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효과가 없고, 산업자본의 사금고 전락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대통령이 언급한 ‘은산분리를 완화해주는 대신 대주주에 대한 대출규제 강화’ 등의 사금고화 제한 장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설득력 없다고 이미 비판한 내용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은산분리 규제 완화 추진 발언에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더불어민주당 당론도 완전히 돌아섰다.

업계 한 관계자는 “논의도 없이 일사천리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처리되고 있다”며 “앞으로 산업자본의 은행산업 침투 문제, 인터넷전문은행의 건전성 문제가 뇌관으로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관계자는 “금융혁신, 핀테크산업 발전,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의 해법은 은산분리 규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인터넷전문은행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산업자본의 은행산업 침투를 허용한다면 향후 더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전문은행 금융혁신의 키였나

금융권의 우려는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핵심 효과인 은행산업의 메기효과 창출이 허상이라는 것이다.

은산분리 완화론자들은 규제를 완화해 인터넷전문은행이 자본을 확충하면 은행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신규 금융상품 개발, 혁신서비스 제공, 대출 금리 인하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은 이미 금융권에서는 논파된 지 오래다.

일단 인터넷전문은행이 새로운 금융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이뤄낸 적이 없다는 비판이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이 현재 판매하는 금융상품은 기존 은행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입출금통장, 정기예적금,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금융상품은 시중은행 상품 구조와 거의 같으며 비슷한 혜택을 제공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어떤 혁신과 차별을 보여줬는지 잘 모르겠다”며 “온라인 서비스 편의성이 약간 상승한 것은 금융혁신이 아니다”고 말했다.

경쟁을 통한 금리 혜택 효과에도 의문부호가 붙는다.

최근 인터넷전문은행의 일반신용대출 금리는 시중은행과 차이가 크지 않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일반신용대출 평균금리는 각각 6.00%와 3.93%로 우리은행(3.79%) 농협은행(3.95%), 국민은행(3.95%) 등과 차이가 없고 오히려 높다. 마이너스통장 금리도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4%대를 유지하고 있어 시중은행과 차별화되지 못했다.

이는 지속되고 있는 손실의 여파로 분석된다. 지난해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약 1000억원대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지난 1분기 역시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설립 초기 낮은 대출금리와 높은 예금금리, 수수료 ‘제로’ 정책 등 순이익을 포기하고 고객을 끌어모르려는 전략을 펼치면서 손실을 떠안았지만 최근 들어 금리를 높이며 시중은행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해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고객이 받는 금리 혜택도 크지 않고 서비스 혁신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라며 “메기효과를 창출하려면 차라리 은행업 허가를 내주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립 취지도 충족 못하는데…

인터넷전문은행의 가장 큰 설립 목적은 중금리(중신용자)대출 활성화였다. 고객의 데이터를 핀테크기술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1금융권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은 이러한 기대를 외면했다.

지난 1월 기준 인터넷전문은행의 가계신용대출 차주 중 고신용(1~3등급) 비중은 96.1%에 달했다. 이는 국내은행의 고신용 차주 비중(84.8%)보다 높다. 반면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신용(4~6등급) 차주 비중은 3.8%로 국내은행(11.9%)보다도 낮다.

신규 취급 대출액 중 금리가 4% 미만인 대출 비중(68.3%)은 국내은행(54.6%)보다 높지만, 5~10% 금리대 대출 비중(7.0%)은 국내은행(23.3%)보다 낮다.

업계 관계자는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인터넷전문은행을 지원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설립 목표였던 중금리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지 알 수 없다”며 “중금리시장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일자리 창출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총 직원수는 200여명대에 불과하고 이는 대형 시중은행의 100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사업 초기 단계에는 신입직원을 뽑기보다 대부분 경력직 직원을 뽑았다.

업계 관계자는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해도 청년채용을 확대하기보다는 기존 경력직을 위한 채용이 반복될 것”이라며 “신규채용 확대 취지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