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적기조례 되지 않으려 ‘은산분리’ 규정 완화 조치

인터넷전업銀 숨통 트이고, 새로운 시장진입자 가능해져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모든 자본은 같은 운동논리를 갖는다. 사마리아인은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지만, 자본의 속성은 동일하다. 다만 상황에 따라 착하게 보일 수도, 악하게 보일 수도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자본은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본질은 자기중심적인 존재라고 말해야 한다.

어느 정도 규모를 확보하게 되면 자본은 권력으로 기능한다. 때론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경우도 있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자본이 기동하면서 경제권력은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

문제는 강한 힘을 발휘할 때 자본의 방향과 일반의 지향점이 다를 때 발생한다. 그리고 일반의 지향점은 규범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지만, 자본은 규범을 이데아로 여기지는 않기 때문에 갈등을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치권력은 자본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자본의 운동 논리를 통제하곤 한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발전의 역사 속에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결탁해서 발생한 폐해를 목도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와 관련한 제도적 장치를 가지고 있듯이 말이다.

대통령이 직접 산업혁명 시대의 영국 ‘적기조례(붉은 깃발법)’를 예로 들면서 인터넷전문 은행에 한해 은산분리 완화를 주문했다. 여야는 발 빠르게 관련 법안 처리를 약속하고 나섰다. 자본의 폐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던 대표적인 법률규정이었던 ‘은산분리’를 두고 여론도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뜨거운 감자임에 분명한 사안이다. 

적기조례와 영국 자동차 산업의 운명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 빠른 생산력 향상을 경험하던 산업혁명 시대. 증기기관은 방직 산업에 머무르지 않고 증기기관차와 증기 자동차 등으로 쓰임새를 넓혀간다. 새로운 엔진이 지닌 산업적 가능성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적용은 인간의 상상력 범주의 문제였지, 기술적 한계의 문제는 아니었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는 1769년 프랑스의 공병장교 니콜라스 조셉 퀴노에 의해 개발된 대포 이동용 자동차였다.

이 차는 한번 증기를 발생시킨 뒤 주행하는 거리가 짧고 방향전환 등의 어려워서 확산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은 퀴노의 자동차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광산에 적용한 증기기관차였다. 그리고 19세기 중엽이 되어서야 버스 등에서 증기 자동차가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불을 안고 거리의 곳곳을 다녀야 하는 증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았다. 자동차의 부피도 컸으며 속도도 빨랐기 때문에 인명사고 등이 발생하자 규제의 목소리가 커져만 갔다. 특히 경쟁 산업인 마차와 기차 사업자들은 자신들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입법 로비까지 벌인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법이 ‘적기조례’(1865년)이다.

이 법에 따라 자동차에는 3명의 운전수가 타야하며 그 중 한 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저녁에는 붉은 렌턴을 들고 전방 55미터 앞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했다. 다른 한 사람은 증기기관에 석탄을 넣는 화부역할을 맡아야 했다. 특히 속도에 대한 제한까지 두고 있어 도심지역에서는 시속 4km를 넘을 수 없었다. 이처럼 증기기관의 장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는 규제는 1896년에서야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 사이, 산업혁명의 중심지 영국의 자동차산업은 유럽의 경쟁국 중 가장 뒤쳐지게 된다. 오히려 영국보다 100년이나 늦게 산업화에 나선 독일은 철강 분야의 성공을 자동차로 연결시켜 최고의 자동차 기술을 보유하는 국가가 된다.

적기조례는 규제가 갖는 대표적인 부정적 사례다. 현재의 ‘은산분리’ 규정이 적기조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발상이 이번 인터넷전업은행에 대한 지분규정 완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 당시의 자본은 권력으로 기능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한 시대다. 그래서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거둘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규제는 모든 것을 막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승자의 독식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해야 새로운 시장진입자가 존재할 수 있고, 새로운 산업의 형성도 가능해진다. 그런 점에서 ‘은산분리’ 완화를 찬성하는 의견이 더 많은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