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위스키, 사케처럼 체험하는 우리 술

전통주, 지역 관광소재와 결합한 새로운 문화상품 전환
국산 농산물 소비촉진 위해 5년 전부터 34곳 선정 운영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111년만의 염천이란다. 뉴스도 연일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날씨를 스포츠 중계를 하는 캐스터의 들뜬 목소리만큼 뜨거웠다. 이른 아침 아직 비켜 서있는 아폴론의 태양마저, 한낮 정수리를 내리쬐던 그 태양만큼 뜨거웠던 여름. 2018년의 한 여름의 일이다.

그러나 자연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여전히 30도를 웃돌곤 있지만 40도를 넘보던 아폴론의 기세만큼은 충분히 무뎌졌기 때문이다. 추분과 말복이 지나면 아침 바람 속에서 가을의 단초를 읽어냈던 예년의 늦여름만큼은 아니지만 말이다.

날씨 이야기를 서두에 쓴 까닭은 휴가철에 찾을 만한 여행지를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황금 휴가철이라 할 수 있는 7말8초를 가장 뜨겁게 보냈던 올 여름의 휴가여행은 쉽지 않았으니 찬바람 부는 계절의 여행을 소개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산과 바다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관광은 구태의연해졌다. 산과 바다의 풍광을 즐기기 위해 길을 나서지만, 더 이상 산과 바다의 풍광이 목적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경치는 지역의 문화와 밀도 있게 결합돼 있다. 역사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경치를 즐기고 그 풍광과 함께 지역을 지켜온 음식을 소비하는 여행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올해로 5년째가 됐다. 올해 선정된 4곳을 포함해 현재까지 34곳의 술도가들이 알코올로써의 술이 아니라 문화로써의 술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정부부처에선 우리 농산물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 공신력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 하는 일이지만, 살아남아야 하는 술도가의 입장은 결연할 뿐이다. 2011년 전후로 일었던 막걸리 붐은 잠잠해졌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전통주가 최근 수년 동안 하나둘 복원되고 있지만 대기업 양조장에서 값싸게 만들고 있는 술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어 좀처럼 틈새를 찾지 못한 점이 직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건축물, 혹은 집안에서 내려오는 전통있는 가양주, 전통주 본래의 제조법 등 존재의 이유가 분명한 34곳의 양조장들은 술보다는 문화라는 관점에서 자신들의 상품을 알리고자 하고 있다. 값싼 제조법으로 만든 대기업의 술과 적극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문화로써의 술은 ‘찾아가는 양조장’ 이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술들이 선행했던 과정이기도 하다.
와인을 즐겨 마시는 애주가들은 프랑스의 ‘샤토’와 ‘도멘’을 직접 방문하길 소원한다. 부르고뉴와 보르도, 샹파뉴 등 대표적인 와인산지를 직접 여행하며 와인을 즐기는 일은 상상만으로 그들을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찾는 경우라면 가까이에 있는 나파벨리를 어떻게든 일정에 넣어려 노력할 것이다. 

2005년에 개봉돼 ‘피노누아와 메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영화 <사이드웨이>는 결혼전 마자막 총각여행을 즐기기 위해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를 찾아다니며 디오니소스가 인류에게 준 선물을 만끽하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는 맥주 매니아로 알려져 있다. 작가로 데뷰하기 전에 바를 직접 운영하기까지 했던 그는 스카치 위스키를 탐하며 스코틀랜드 여행길에 나선다. 캠벨타운, 하이랜드 스페이드사이드 등 대표적인 위스키 산지를 다니며 위스키에 흠뻑 취했던 흔적들은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책으로 모아져 있다. 

어디 이뿐이랴. 가까운 일본의 경우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아재들의 술’로 치부되며 젊은 층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사케를 문화적 이미지로 최대한 노출시키려고 있다. 

우리 희석식 소주와 값싸게 만들어진 막걸리에서 문화적 이미지를 쉽게 찾을 수는 없지만, 애주가들은 와인과 위스키, 사케 등의 술에서 알코올 그 이상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시도에서 지정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또는 농림부에서 지정하고 있는 식품명인 들의 술은 이미 문화적 이미지를 충분히 갖고 있는 술들이다. 여기에 ‘찾아가는 양조장’은 술도가 자체를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만들어준다. 

다음 글에서 이 술도가들이 어떤 문화적 코드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잊었던 전통을 되살리는 술 한 잔을 찾기에 좋은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올레길과 둘레길 등의 길을 찾아 나서듯 ‘찾아가는 양조장’에 담긴 우리 술의 흔적을 찾아서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