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퇴직연금 가입자의 90%가 제도 가입 이후 운용자산(포트폴리오)을 한 번도 변경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퇴직연금 가입자 10명 중 9명 이상이 자산포트폴리오 조정을 한 번도 하지 않았으며, 가입자의 80% 이상이 원리금보장상품 중심으로 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어 수익률은 1%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퇴직연금 자산관리에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해 전통적인 투자자문업의 대안으로 성장하고 있는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 대한 검토가 요구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우리나라도 최근 자본시장법시행령 및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을 통해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자문 및 일임서비스 제공이 일부 가능해졌지만 아직은 그 수준이 매우 낮은 편”이라며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어떻게 로보어드바이저를 퇴직연금 자산운용에 접목해 활용하고 있는지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후 저위험 포트폴리오 선호 확대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전 세계 거래대금 비중은 미국(57%), 독일(9%), 영국(8%) 등의 순으로 지역적으로 볼 때 유럽보다 미국이 활성화돼 있는 상태다.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시장 붕괴현상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과거와 달리 저위험 포트폴리오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또 저금리 환경이 지속되며 소비자들은 자산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보다 민감해져 저렴한 비용의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한 니즈가 증가했다. 전통형 자산운용방식에 대한 연간 수수료는 1~2%에 달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 이용 수수료율은 0.25~0.5%에 불과하다.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세대가 베이버부머 세대에서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X세대 및 밀레니얼 세대로 전환된 것도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수요 증대로 이어졌다.

온라인에 익숙한 X세대 및 밀레니얼 세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존 금융회사를 불신하고 상대적으로 컴퓨터와 기술력을 신뢰하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모든 과정이 자동화돼 24시간 이용이 가능하고 대면접촉이 필요 없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전통적인 자문서비스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졌다.

정부규제 변화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형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국 노동부는 2011년 컴퓨터 모형을 이용한 투자자문도 퇴직연금 수탁자의 범위에 포함시키며 수수료 공시의무를 부과하고 컴퓨터모델이 사용하는 알고리즘에 대해 매년 인증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금융상품 보수지급방식이 판매수수료에서 자문보수로 전환되고 자산운용에 대한 가격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감독방식이 변화됐다.

다양한 성장배경을 기반으로 미국의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서비스 제공주체와 활용영역의 중심축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모습니다.

보험연구원 류건식 연구위원은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초창기에는 주로 자산관리서비스 시장에 서비스를 적용해 왔지만 최근에는 퇴직연금 운용시장으로 영역이 확산되는 추세”라며 “또 Betterment, Personal Capital, Wealthfront 등 전문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됐지만 최근에는 금융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를 개발하거나 IT업체와 업무제휴 등을 통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금융기관 앞다퉈 퇴직연금에 RA 적용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업체인 ‘Betterment’는 2016년부터 미국 퇴직연금 401(k)제도 가입자의 위험성향에 기초한 투자포트폴리오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401(k)제도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 플랫폼을 출시하면서 자산규모에 따라 10~60 bp 보수 수준으로 ETF 기반 포트폴리오를 통해 퇴직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Fidelity, Vanguard, Schwab 등의 금융기관도 자체 로보어드바이저 개발을 통해 각 회사가 보유한 기존 퇴직연금가입자를 대상으로 위험성향 분석, 포트폴리오 구성 및 제안, 자산조정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퇴직연금시장 성장가능성에 주목하고 2016년 3월 퇴직연금전문 로보어드바이저 업 체인 ‘Honest Dollar’를 인수해 퇴직연금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Honest Dollar는 2015년 설립된 회사로 중소기업 근로자 및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월 8달러의 수수료로 퇴직연금 운용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UBS아메리카, 웰스파고도 로보어드바이저 전문업체인 ‘SigFig’와 전략적 제휴 체결을 통해 퇴직연금 가입자들에게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시장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특정고객을 대상으로 한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도 늘어나Ellevest의 경우 타 금융회사와 달리 높은 평균수명, 낮은 평균임금, 소비 저축행태 등 여성 고객에 특화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전문가들은 주요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황에서 로보어드바이저의 이해상충 문제, 데이터 보안, 투자손실 시 책임 문제 등을 지나치면 안된다고 지적한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미리 짜여진 알고리즘으로 고객의 투자성향 및 투자목적과 관계 없이 임의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을 제안할 수 있어 시장 경쟁이 심화될 경우 불완전판매 위험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미리 짜여진 알고리즘이 고객보다 로보어드바이저의 이익을 우선해 유리한 수수료 및 보수를 제공하는 금융투자상품 위주로 추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WSJ(2015) 조사결과 동일 유형의 사람에게 로보어드바이저가 추천한 자산배분결과를 보면  자산별 편차가 매우 커 근로자에게 적합한 자문이 이뤄질 필요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중위험 고객에 대해 Wealthfront는 현금 및 기타자산에 대한 투자로  5%,  Schwab는 동 자산에 19%의 투자를 제시했다.

시장침체기를 거치며 투자손실이 발생할 경우 로보어드바이저 관련 책임소재 문제도 대두될 수 있다.

투자자가 사전에 입력한 허용가능 위험범위를 벗어나 투자집행을 하거나 로보어드바이저의 위법행위로 투자자에 손해배상책임이 발생한 경우 투자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로보어드바이저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시장 호황기에 출시돼 아직 침체기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충격에 대응하는 능력이 검증되지 못했다.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집중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저해할 가능성과 사이버보안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이슈다.

개별 금융기관에서 운영하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알고리즘이 고객들에게 유사한 투자전략을 추천할 경우 시장 내 특정자산에 투자가 집중되는 군집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다수가 쉽게 자문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반면 데이터 보안(알고리즘 해킹), 개인정보 유출 등 사이버보안 문제에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안전한 노후보장 위해 철저한 RA교육 요구

우리나라는 일부 금융회사에서 로보어드바이저를 퇴직연금 자산관리서비스에 접목해 운용하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볼 때 활용범위 및 서비스 수준은 상당히 미흡한 상태다.

아직 개인의 투자성향 등을 기초로 포트폴리오를 단순히 설계해 제공하는 수준에 불과해 사람의 개입 없이 온라인상에서 자동적으로 연금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은 일반 금융투자상품의 운용보다 근로자와 수탁자간 이해상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크므로 근로자의 수급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낮은 수수료, 높은 접근성 등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자칫 잘못된 운영으로 투자손실이 발생할 경우 근로자의 노후보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로보어드바이저 활용 대상은 미국처럼 개인퇴직계좌(IRA) 가입자 중심이 될 수 있어 사전에 철저한 투자교육과 운용설명이 요구된다.

류건식 선임연구원은 “로보어드바이저의 위법행위 발생은 퇴직연금 가입자의 수급권에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기존의 수탁자 범위를 로보어드바이저 운용기관으로 확대해 엄격한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며 “근로자 퇴직급여보장법 및 시행령 등에 수탁자 범위를 로보어드바이저 운용기관까지 확대해 별도의 수탁자 책임 부여와 함께 로보어드바이저의 위법행위 등으로 투자손실 발생 시 손해배상의 책임주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규정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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